강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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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금성 시절의 강득수

강득수(1961년 8월 16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84년부터 1991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하였던 공격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강득수
  • 출생일 : 1961년 8월 16일
  • 유스클럽 : 연세대학교 졸업
  • 신체 : 173cm / 67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81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대표
1983년 ~ 198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86년 FIFA 멕시코 월드컵 본선 대표
  • 수상 경력
1985년 K리그 시즌 베스트 11 공격수 부문
1986년 K리그 도움왕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특이 기록
1986시즌 최소 경기 시즌 10 어시스트 달성
K리그 역대 최소경기 출장 40 어시스트 달성 기록 보유. (167경기 출장만에 달성)
K리그 통산 최다 도움 해트트릭 기록 보유 (2회)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럭키금성 황소 1984 27 5 2 6 1 0
1985 21 0 5 3 1 0
1986 17 1 2 10 0 0
1987 31 6 4 3 0 0
1988 23 1 3 5 2 0
1989 20 1 4 7 1 0
현대 호랑이 1990 20 1 1 4 0 0
1991 19 14 1 4 0 0
통산 (K리그) - 178 29 22 42 5 0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유소년 생활[편집]

경기도 평택 출신으로 서정리 초등학교, 서울 신림중학교, 한양공업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K리그[편집]

럭키금성 황소에서 6년간 뛰어난 활약을 펼친 후 1989년 겨울 럭키금성과의 계약이 만료된 강득수 선수는 현대 호랑이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아 계약금 3천만원[1], 연봉 3천만원에 이적하게되었다. 이 이적과 관련해 하나의 병크가 터지는데 1989년 당시 현대 호랑이를 제외한 5개 구단은 1984년 제정한 프로선수 관리세칙에 의거해 한팀에 입단한 선수는 6년간 소속팀을 바꿀 수 없다.는 규정과 함께, 설사 특정 선수의 6년 계약이 만료된다하여도 원 소속팀이 해당 선수와의 재계약 포기 이전까지는 다른팀이 선수와 협상할 수 없고 설사 협상한다해도 그 계약금은 3천만원으로 이하로 하자.는 이면적 담합을 구성했던바, 이는 대충 야구 규정을 흉내내서 급조한 한국 프로축구 시스템의 후진성과 선수의 FA 권리 행사를 원천봉쇄하는 기업 이기주의가 표면에 드러난 악규정 중의 악규정이었다.

요컨대, 강득수 선수의 현대 이적은 위에 언급한 기업구단간 담합에 대한 현대의 선전포고와도 같았으며 이에 현대 호랑이 vs 이외 5개 구단간 다툼속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처럼 하마터면 강득수 선수는 선수생활을 강제로 정리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1989년 12월, 럭키금성 측은 강득수 선수가 임의로 현대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해버리는 초강수를 두었기에 이런 우려는 현실화될 뻔하기도 하였으나, 임의탈퇴 공시요청을 받은 대한축구협회는 '럭금 너네 강득수 선수랑 계약기간 다 끝났는데 왜 생떼임? 이라는 당연한 해석으로 임의탈퇴를 무효한바 강선수는 현대 호랑이에서 1990시즌도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위에 언급한 프로선수 관리세칙이란 말도 안되는 규정은, 강득수, 정종수, 변병주 선수등 6년차 선수들이 대거 나오면서 프로구단들이 이 세칙에 계속 발목을 잡히자, 자진 철회하면서 없어지게 되었다.[2]


은퇴 이후[편집]

은퇴 후 1993년부터 숭덕공고 축구부 코치로 활동하였으며, 1997년부터는 능곡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후 모교인 한양공업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인창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를 거쳐 2013년 김희태축구센터 코치로 부임하여 김희태 총감독을 보좌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K3 챌린저스리그에 참가 중인 FC 의정부에서도 김희태 감독과 함께 코치로 등록되어 김희태축구센터와 FC 의정부 두 곳에서 활발한 활동 중에 있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오른발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왼쪽 윙어를 맡았던 선수이다. 빠른 스피드와 공간 침투능력을 겸비해 골키퍼와 1:1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다. 그러나 1:1 찬스 상황에서도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것 보다는 동료 공격수에게 어시스트하는걸 즐겨, 많은 도움을 올릴 수 있었다. 혹자는 강득수 선수가 골욕심을 조금만 더 부렸더라도 K리그에서 좀 더 전설적인 위치에 올랐을것이라 아쉬워하기도.


에피소드[편집]

  • 1984년 데뷔 시즌부터 에이스의 상징인 10번을 달고 뛰었는데 그 이유가 퍽 재밌다. 다른 럭키금성 선수들이 부담감때문에 10번을 안 고르고 딴 번호만 고르려 하길래 냉큼 골랐다고..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1] (K리그 전설 - 강득수 편)


참고[편집]

  1. 발표는 계약금 3천만원이었으나 원소속 구단이었던 럭키금성을 비롯해 다른팀들은 현대가 적어도 6천만원의 계약금을 지급했다고 반발했었다.
  2. 그런데 최진한 선수의 1991년 사례에서 보듯, 세칙의 영향력이 완전히 없어진건 아니었다. 대략 1994년 이후에야 완전히 없어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