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철강

풋케위키, 대한민국 대표 축구위키 FootballK WIKI-
(극동철강 축구단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극동철강(極東鐵鋼)은 대한민국 제철사업 태동기에 존재한 철강 회사 중 하나로, 금호그룹 계열사 시절 극동철강 축구단[1] 또는 금호산업 축구단이라는 축구팀을 운영하기도 했다. 금호산업 시절에도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했으나, 축구단 자체는 단명하고 말았다.


극동철강공업 주식회사[편집]

극동철강공업(주)은 1958년 8월 부산에서 설립된 회사로 동국제강과 더불어 한국 제철사업 초기를 대표하는 철강 회사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1976년 금호그룹에 인수되었으며, 1977년 12월 금호산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후 금호산업은 1979년 9월 같은 금호계열사인 금호전자?와 합병하였으며, 1981년에는 금호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종합상사인 금호실업(주)과 합병하여 '금호실업 철강사업부'가 되었으나, 1984년 금호실업은 철강 사업을 정리하면서 한보철강에 인수되었다. 한보철강 인수 이후에는 1985년 매출을 2배가량 끌어올려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돌아서고, 이전까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 등 건설업에 치중하던 한보그룹의 주력회사로 성장했으나.. 충남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5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국회 로비로 인해 1997년 IMF사태의 도화선이 된 '한보사태'의 원흉이 되는 굴욕을 겪으며, 정리 절차에 돌입,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2년 당진제철소는 INI스틸에 인수되었으며, 부산제강소는 일본 야마토 코교그룹에 인수되어 야마토 코교그룹이 100% 출자한 YK스틸이라는 회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극동철강 축구단[편집]

극동철강 축구단 (아마추어)[편집]

극동철강 축구단은 1977년 9월 창단된 축구팀으로 1년에 한번 있는 사내 대항전을 위해 대학 및 실업지명에 실패한 무명의 고교축구선수 출신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구성하고, 당시 실업 은퇴를 앞둔 조흥은행 골키퍼였던 도은낙 씨를 플레잉코치로 임명하여 직장 아마추어 축구팀으로 출발하였다. 창단 후 개최된 1977년 3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첫경기에서 상업은행에 승리를 거두며 이목을 끌었다. 16강전에서는 국민은행에 2 대 2로 비긴후 승부차기에서 4 대 3으로 승리하여 신생팀 파란을 주도했으나, 8강에서 중앙대에 1 대 0으로 패하며 분루를 삼켰다.


금호산업 축구단 (실업)[편집]

이후 모기업인 극동철강이 금호산업으로 바뀜에 따라 1978년 9월 팀명칭도 금호산업 축구단으로 바뀌었으며, 전직 국가대표 선수였던 서윤찬씨를 코치로 선임하고 당시 홍콩 세미프로 축구리그에서 활약했던 임태주 선수를 비롯, 최호춘, 김용관, 추종수 등을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실업축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1979년 3월,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참가하여 신생팀임에도 조별예선 통과를 눈앞에 두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금호산업측이 선수 등록이 되지 않은 부정 선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되면서 몰수패를 당해 첫 대회 참가를 어이없이 마무리짓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대회 참가 2달여 만인 1979년 5월, 금호산업 측이 경영상 부진을 이유로 금호산업 축구단 해체를 결정해버리면서 금호산업 축구단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경남버스 축구단(부산), 동양기계 축구단(마산)과 더불어 79년 지방실업구단 붐을 일으켰으나 결과적으로는 혜성처럼 나타났다 혜성처럼 사라져버린 셈.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극동철강의 본사가 부산에 있었으므로 '부산극동철강'이라는 명칭으로 축구팀 기록이 표기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