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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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1945년 8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동명이인으로 198ㆍ90년대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한 김창일도 있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창일
  • 출생일 : 1945년 8월 16일
  • 신체 : 172cm / 63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65년 AFC U-19 챔피언십 본선 대표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66년 ~ 1971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30경기 출장 2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학창 시절[편집]

평안북도 강계군 출신으로, 4살 때 1.4 후퇴를 겪으며 가족들과 함께 월남하였다고 한다. 이후 강원도 영월에 정착하였으며 상동중학교 시절부터 축구에 눈을 떴다고.. 당시 영월군에는 텅스텐 채굴기업인 대한중석이 위치해 있었으며, 그 산하에 실업 축구단이 있어 운동장만 찾아가면 축구 훈련을 하는 대한중석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김창일 씨는 축구 훈련을 하는 선수들을 눈대중으로 따라하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워갔는데.. 그러나 중학생 시절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축구 선수의 길을 포기할뻔 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주변의 도움으로 서울 유학에 성공, 이후 경신고등학교 장운수 코치의 눈에 들어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에 입문한 끝에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선발, 고려대학교에 진학까지 이루어내며 성공 가도를 나아가게 된다.


성인 시절[편집]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김선수는, 고려대학교 1학년을 마친 뒤 중퇴를 결심하였고 이후 어린 시절부터 동경의 팀이었던 대한중석 축구단에 입사, 당시 대한중석 소속 유일한 축구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리며 오랜 시간 활약하였다. 이어 1973년 박태준 회장이 창단한 포항제철 축구단에 스카우트 되어 이회택 등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1977년에는 3개월 간 홍콩 1부 리그 팀인 해봉에 입단하며, 32살의 나이로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홍콩에서 단기간 활동 후 한국에 돌아온 김선수는 포항제철에서 77년 말까지 활동하다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국가대표 시절[편집]

은퇴 이후[편집]

에피소드[편집]

  • 월간축구 1971년 8월호에 의하면, 대한중석포항제철 축구단청룡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셨던 한홍기 씨가 김창일 씨와 매부[1]관계 된다고 한다. 김창일 씨가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적잖은 연관 관계가 있었을듯. 다만 공사가 엄격했던 한홍기 씨는 청룡 시절 사제 관계까지 맺기도 했던 김창일 선수를 상당히 깐깐하게 평가하며 대표팀 시절 출전을 잘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즉 김창일 씨 누나의 남편이 한홍기 씨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