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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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절 김한섭

김한섭 (1982년 5월 8일 ~)은 내셔널리그창원시청 축구단에서 데뷔하여 경찰청에서 군복무 제대후, 2009년 대전 시티즌에 입단한 수비수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김한섭
  • 생년월일 : 1982년 5월 8일생
  • 신체 : 177cm / 74kg
  • 출신학교 : 창경초 → 도봉중 → 영등포공고 → 동국대


  • 리그 기록
소속팀 리그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자책
창원시청 축구단 KNL 2005 19 1 3 2 2 0
2006 15 0 0 0 4 0
대전 시티즌 K리그 2009 11 0 1 0 1 1
2010 18 3 0 0 2 0
2011 19 0 0 1 5 0
인천 유나이티드 2011 8 1 0 0 2 0
2012 15 3 0 0 2 0
대전 시티즌 2013 11 6 0 1 3 0
챌린지 2014 18 15 1 2 0 0
용인시청 축구단 KNL 2015 0 0 0 0 0 0
통산 K클 - 82 13 1 2 15 1
K챌 - 18 15 1 2 0 0
KNL - 34 1 3 2 6 0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4시즌 종료 기준.
연맹 공식 DB


설명[편집]

2009년 드래프트에서 번외지명으로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여, 현재까지 활약하고 있는 수비수이다. 포지션은 사이드 풀백. 좌우 모두 소화할 수 있다.


학생 시절[편집]

김한섭 선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영등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1], 동국대학교에 진학하였다. 동국대 시절에서도 각종 대학 축구 수상기록에 김한섭 선수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동국대에서도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던듯 싶다. 참고로 원래 윙 포워드였던 포지션을 동국대 재학시절 사이드 풀백으로 전환해 현재까지 수비수로 뛰고 있다.


내셔널리그 시절[편집]

2004년 동국대를 졸업하고[2] 이듬해부터 내셔널리그 (당시 K2리그)의 창원시청 축구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된 김한섭 선수는, 창원시청의 플랫 3의 한축과 윙백을 오가는 스위칭 플레이를 펼치며 대활약하였다. 특히 2006년에는 플랫 4에서 사이드 풀백을 담당해 창원 시청을 내셔널리그 선수권대회[3]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창원시청 축구단은 2006년 김한섭 - 김영중 - 전광철의 철벽 수비라인을 바탕으로 그 해 내셔널리그 최저 실점 2위 팀에 랭크되었다.


대전 입단과 근황[편집]

2006년까지 2년 간의 창원 시청 활약후, 경찰청 축구단에 입단하여 2년간 군복무를 마친, 김한섭 선수는 2009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번외지명으로 지명되어, 그 해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당시 27세) 번외지명으로 입단하였으나, R-리그에서 좋은 활약도와 충실한 수비능력을 보인 김한섭 선수는 2009시즌 후기리그부터 풀타임을 소화하며 양정민 선수와 좌우 풀백 라인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수비능력에 비해 공격능력이 아쉽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또한 공중볼 장악에 미숙함을 보여, 헤딩 미스로 뒷공간을 내줘 실점위기를 자초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우승제 선수의 로테이션 자원으로 김한섭 선수만한 자원도 없다는게 다수의 평가. 2010 시즌에도 우승제 선수의 로테이션 자원으로 각 경기를 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이는 제법 되지만, 풀타임을 능숙히 소화하는 활동량과 군필이라는 장점등이 두드러지는 선수이기에 장래 우승제 선수의 군입대 이후[4], 김한섭 선수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프로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선수다. 2011시즌에도 승부조작 여파속에서도 묵묵히 제역할을 해내다가 7월말 인천 유나이티드로 2:1 트레이드되었다.[5]



인천에서는 전재호의 대체자로서 오른쪽 윙백으로 간간히 출전하고 있다.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 2012시즌 시즌 초반 부상에 시달리면서 부진했으나, 이후 간간히 오른쪽에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4월 초 상주와의 원정경기 이후 부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기간동안 이규로가 부상에서 회복하여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백업 멤버로 전락하였다. 그래도 가끔씩 출장 기회가 있을때마다 수비적인 면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 김한섭 (인천 유나이티드) ↔ 김창훈 (대전 시티즌, FA)


2013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로 이적하였다. FA 김창훈과 트레이드 되었는데 아무래도 2013년부터 적용되는 FA 보상금 지불 대신 선수 트레이드 방식을 이용한듯. 친정팀 격인 대전에 복귀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윤원일, 박진옥 등 신진 멤버들에 밀려 6월 현재까지 1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이후 후반기부터 경기를 소화하였으나 기량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을 들으며 소속팀의 강등을 막아내는데는 실패하였다. 이후 2014시즌에도 대전과 재계약하며 활동을 지속, 대전을 1시즌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재승격시키는데 공헌한 뒤 2015시즌을 앞두고 용인시청 축구단으로 플레잉 코치 자격으로 이적하며 지도자 생활을 준비 중에 있다.


에피소드[편집]

  • 팬들에게 한마디가 멋있기에 옮겨와본다. 경기장에 오는 팬들이 없다면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흘리는 땀은 아마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팬들이 있기에 선수들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열심히 뛸 수 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분들에게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허정무 감독과 인천 팬들의 팬미팅 자리에서[6] 윙백을 어떡할 것이냐는 팬의 질문에 허감독은 "김한섭을 데려왔다. 김한섭보다 더 잘하는 윙백 있으면 이야기 해 달라" 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인천이 현실적으로 영입할 수 있는 선수 중에 가장 괜찮은 선수였다는 것이 허정무 감독의 평.


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편집]

  1. 전에 영동고라고 적혀있었으나 영등포공고가 맞는 듯하다
  2. 동국대 4학년 재학시절, 갑작스레 동국대 감독이 교체되면서 눈밖에 난, 김한섭 선수 포함 동국대 졸업생 4명은 모두 창원 시청에 입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3. 내셔널리그 우승이 아니라, 내셔널리그의 컵대회로 보면 될듯.
  4. 우승제 선수는 82년 10월 생으로, 2010년 12월이 상무 입대의 마지노 선이다.(만 28세까지만 상무 입대 가능) 근데 현실은 면제받고 수원행 ;;
  5. 본인에게도 갑작스런 이적이었다고. 하지만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나갈 가능성이 무척 높긴 했었다..
  6. 당시 허정무 감독의 성적 부진과 경기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인천팬들과 허정무 감독과의 만남의 시간이 주선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