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 금융단축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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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배 금융단축구대회는 1969년에 시작되었고 한국 성인축구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그러나 사회적 여건이 변하면서 산업은행,농협,외환은행,조흥은행등 은행팀이 연이어 해체되고 새로운 실업대회가 창설되면서 1981년 11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된다. 이후 금융단축구의 활성화가 논의되면서 1985년에 부활했으나 1993년을 마지막으로 대회가 폐지된다.


역대 대회 결과[편집]

횟수 연도 우승팀 준우승팀 비고
제1회[1] 1969 조흥은행 주택은행 첫번째 대회
제2회 1970 상업은행 기업은행
제3회[2] 1971 외환은행 조흥은행
제4회[3] 1972 서울은행 한일은행
제5회[4] 1973 상업은행 조흥은행
제6회[5] 1974 신탁은행 국민은행
제7회 1975 국민은행농협 공동 우승
제8회 1976 대회 미개최[6]
제9회 1977 외환은행 한일은행 대회 당시엔 8회
제10회 1978 농협 기업은행 대회 당시엔 9회
제11회 1979 서울신탁은행 기업은행 대회 당시엔 10회
제12회 1980 대회 미개최
제13회 1981 제일은행서울신탁은행 공동 우승 대회 당시엔 11회
제14회 1982 대회 미개최
제15회 1983 대회 미개최
제16회 1984 대회 미개최
제17회 1985 한일은행 국민은행 대회 당시엔 15회
제18회 1986 기업은행 국민은행 대회 회차 조정[7]
제19회 1987 국민은행 한일은행
제20회 1988 국민은행 상업은행
제21회 1989 국민은행한일은행 공동 우승
제22회 1990 한일은행상업은행 공동 우승
제23회 1991 한일은행 상업은행 공동 우승제도 폐지
제24회 1992 주택은행 국민은행
제25회 1993 국민은행 주택은행


참고[편집]

  1. 제 1회 대회는 대통령컵쟁탈금융단축구대회라는 명칭으로 1969년 9월 서울운동장효창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9월 30일까지 진행된 초대 대회에서 결승전은 조흥은행주택은행이 격돌하였으며, 연장전 끝에 조흥은행이 2:1로 승리하며 첫대회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2. 1971년 제 3회 대통령배 쟁탈 금융단축구대회는 동년 7월 20일부터 8월 1일까지 효창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1972년 뮌헨 올림픽 준비에 한창이던 청룡 대표팀 멤버들이 제외되고, 제15회 메르데카컵백호 대표팀 멤버들도 차출됨에 따라 제3회 대회는 각 축구단이 대표급 선수들이 모조리 제외된채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결국 국가대표 선수가 가장 많았던 기업은행 (5명), 신탁은행 (4명), 서울은행 (3명) 등이 예선탈락의 수모를 당했고, 결국 결승전은 외환은행조흥은행이 격돌하여 외환은행이 후반 44분 박대호 선수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하였다.
  3. 1972년 9월,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된 4회 대회 우승의 주인공은 서울은행 이었다. 서울은행의 창단 첫 금융단축구대회 우승. 서울은행은 결승전에서 한일은행을 맞이해 이준옥 선수의 결승골을 잘지켜 1:0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준우승 팀이었던 한일은행은 기업합리화 작업의 여파로 축구단 해체의 위기를 겪고있었는데, 동대회의 준우승 덕분에 해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4. 1973년 10월, 제5회 대통령배쟁탈금융단축구대회로 효창운동장에서 치루어졌다. 당시 결승전은 상업은행 vs 조흥은행의 경기로 이루어졌으며, 상업은행 선수였던 김호의 맹활약으로 조흥은행을 2:0으로 누르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상업은행의 우승은 1970년 2회 대회 우승 이후 3년만의 재우승. 결승전에서 상업은행은 김호의 어시스트를 받은 김성환과 오준공 선수의 연속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동대회 최우수 선수상은 결승전에서 2도움을 올린 김호에게 돌아갔다.
  5. 1974년 6월 1일부터 18일까지 서울운동장에서 치루어졌다. 18일 결승전에서 신탁은행국민은행이 격돌하였으며, 신탁은행은 김세휘 선수가 2골을 연달아 몰아치며 노흥섭 선수의 1골로 앞서가던 국민은행을 제치고 역전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날 결승전에서 주심 성낙운 씨는 국민은행과 신탁은행 선수들의 잦은 항의로 꽤 고생을 했다는 후문. 대회 MVP는 신탁은행의 김기효 선수에게 돌아갔다.
  6. 금융단축구협의회의 해체 여파로 대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7. 전년도는 15회였으나 16회가 아닌 18회로 기록이 된다. 원래는 월드컵같이 해당년도에 개최가 되지 않으면 해당년도의 회차는 인정하지 않고 그 후년에 개최되면 다음회차가 기록이 되어왔다.(1975년 7회대회 이후에 1976년에 미개최, 1977년에 8회대회가 개최되었다.) 1981년 11회대회가 개최된 이후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대회가 중단되었다가 1985년 부활하면서 이 3년간의 공백기간을 올림픽처럼 회차로 인정하면서 15회로 기록이 됐다. 다만 대회를 치루고 난뒤에 그 이전의 미개최 년도(1976년과 1980년)도 존재하고 있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했기에 기준을 소급적용 하면서 1986년 대회는 16회가 아닌 18회로 정정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