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축구
역사[편집]
탄생[편집]
한국에 남자 근대 축구의 역사는 19C 말엽부터 시작되었지만, 한국 여자 근대 축구의 시작은 약간 늦은 1949년에 이루어졌다. 1949년 당시 체육신문사 사장이었던 김은배 씨가 전국여자체육대회를 개최 준비중에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접한 국제심판 겸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인 김화집 씨가 전국여자체육대회 종목으로 축구도 넣자고 설득하였다고. 결국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1949년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국 최초의 여자축구대회가 서울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여자축구 출전팀은 무학여중, 중앙여중, 명성여중, 서울여중, 대구여중까지 총 5팀이었으며 무학여중이 우승을 차지하였다. 불행히도 이듬해 터진 6.25 동란으로 체육신문사가 와해되면서 이후 꾸준한 여자축구 경기가 이루어지지는 못하였으나 한국 여자축구의 첫걸음을 디디게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아래는 당시 전국여자축구대회 결승전 무학여중 vs 명성여중 출전 선수 명단이다.[1]
포지션 | 무학여중 출전 선수 | 명성여중 출전 선수 |
---|---|---|
골키퍼 | 이숙미 | 구정숙 |
풀백 | 이명희 | 이은하 |
변창미 | 박순자 | |
하프백 | 유진화 | 최애식 |
임옥희 | 임정 | |
양명곤 | 박의택 | |
윙어 | 오경숙 | 이광수 |
이혜석 | 이익화 | |
인너 | 이영자 | 최실희 |
김흥순 | 정순희 | |
센터포워드 | 이영숙 | 이영옥 |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단 선발[편집]
전국여자축구대회를 끝으로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국 여자 축구는 암흑기 상황에 놓여있었다.[2] 그러다 1985년 FIFA가 FIFA 여자 월드컵을 창설 준비 중[3]이라는 소식을 접한 대한축구협회는 종별실내축구대회에서 여자축구 경기를 시범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1985년 3월 여자축구를 육성, 발전시키겠다는 명분 아래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위원회가 구성되었고,[4] 직접 운영하는 여자 축구단이 창단되기에 이른다.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단은 감독 김화집, 코치 안원남을 필두로 인천전문대학교 여자 축구부가 다수 참여하여 총 23명의 선수로 구성되어 첫 출발을 알렸다.
분류[편집]
참고[편집]
- ↑ 당시는 교체 선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베스트 11만 기록되어 있으며 해당 경기 심판은 김화집 씨가 맡았다.
- ↑ 다만 완전히 여자 축구 경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정말 가끔씩 여자축구팀이 급조되어 경기가 치러지는 경우가 있긴 했다. 1970년 8월 15일의 경우, 효창운동장에서 동양정밀공업 사내 여자축구팀 vs 천양주조 사내 여자축구팀 간 경기가 벌어졌던바 있고 1973년에는 1970년과 1971년 각각 이탈리아와 멕시코에서 벌어졌던 여자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전주/서울/인천 등지에서 여자 축구팀이 창단 붐이 일었던바 있다. 하지만 위 두 대회는 FIFA 주관 공식 대회가 아니었고, 71년 멕시코 대회를 끝으로 지속되지 못하고 와해되면서 한국 여자 축구도 월드컵 참가라는 추진 동력을 잃고 다시 표류하고 말았었다.
- ↑ 다만 여자 월드컵 자체는 6년이나 뒤인 1991년에야 1회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 ↑ 이 때 대한축구협회 여자축구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신 분이 위에서 소개된 한국여자축구의 아버지 김화집 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