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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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대 (1918년 2월 20일 ~ 1983년 1월 4일)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이다.


선수 시절[편집]

배재중학, 보성전문을 나왔으며, 배재중 시절까지만 해도 의학도와 축구 선수의 길을 놓고 갈등할 정도로 다재다능하기로 명망이 높았다. 결국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민병대를 놓고 연희전문과 보성전문 간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졌는데.. 연희전문은 당시 축구부 주장이었던 위혜덕 씨가 직접 나서 설득 작업을 벌인 반면, 보성전문은 민선수를 납치하는 방법을 썼던바 결국 보성전문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1] 이후 보성전문 1학년 시절부터 일본 축구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보전 졸업 후에는 평양 축구단에서 활동하며 일제강점기를 보냈다.

광복 후에는, 김용식 씨와 더불어 조선전업 축구단을 창단했고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 대표는 물론, 1952년 헬싱키 올림픽,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는등 노익장을 과시하다[2] 최종적으로 1954년 특무대 코치 겸 선수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지도자 시절[편집]

1954년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특무대 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및 단장, 주택은행 축구단 감독 등을 역임하였고, 대한축구협회 이사 및 부회장 등을 두루 거치며 활동하다, 1980년부터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직을 맡았던 것을 마지막으로 1983년 1월 4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65세.


참고[편집]

  1. 월간축구 70년 7월호, 나의 선수 시절 코너 참고
  2. 1938년 ~ 1945년까지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축구 등 체육행사가 전면 중단되었던 탓에 축구를 할 줄아는 자원이 많질 않았다. 결국 김용식, 민병대, 박대종, 이유형 등 1938년 이전 세대들이 1950년대 초반까지 선수 겸 지도자를 겸직하며 후학도 양성하고, 대회도 나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