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비탈리 (Vitaliy Parakhnevich 1969년 5월 4일~ )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외국인 선수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공격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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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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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이전[편집]
1987년 Neftyanik Akhtyrka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비탈리는 1988년부터 92년까지 SKA Odessa팀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Nyva Ternopil와 Chornomorets Odesa에서 활약한 비탈리는 1995년 러시아의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서도 활약하였다.
K리그 시절[편집]
전북 시절[편집]
1995년 전북 버팔로의 선수단을 베이스로 창단한 전북 다이노스는, 1순위로 지명한 김도훈이 국가대표 차출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에 나설수 없게되자 스트라이커 부재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때문에 외국인 스트라이커를 찾기위해 노심초사하던 전북은 마침내 러시아에서 비탈리를 발견해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적료는 12만달러, 월봉 4000달러로 당시 기준으로도 헐값 영입이었다. 많은 축구인들은 싼게 비지떡이라며, 저렴하게 데려온 비탈리를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비탈리는 후기리그만 뛰고도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는데 성공하였다. 1995년 8월 30일, 일화 천마와의 데뷔전에서 K리그 데뷔골을 신고하더니 4경기 연속골을 집어넣으며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것. 1995년 4골을 기록하며 K리그 무대에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은 비탈리는 이듬해인 1996년에도 33경기에 나와 10골 6도움을 기록했고, 1997년에도 29경기에 나와 7골 2도움을 기록하면서, 전북의 공격진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비탈리는 1998년 부상을 당하면서 활약도가 주춤해졌고 최만희 감독과 비탈리간의 불화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비탈리는 전반기 9경기에 나서 1골만을 넣는 극도의 부진을 보인 끝에, 결국 1998년 5월 수원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적료 2억 2천만원, 연봉 2억 6천만원에 2년 계약의 조건이었다.
수원 시절[편집]
비탈리의 수원 입단 당시 언론은 후반기에 합류한데다 부상의 여파로 비탈리가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비탈리는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생각하는 선수로 변화하였고, 수원의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가며 득점행진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8월에는 샤샤가 합류하면서 비탈리는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으로 활약하였고, 21경기 7골 4도움을 기록하며 수원의 첫번째 K리그 우승을 안기는 1등 공신으로 대활약하였다. 이듬해인 1999년에도 비탈리는 샤샤와 찰떡 궁합을 이루면서 10골 10도움을 기록. 1996년 라데에 이어 역대 2번째로 1시즌 10골 10도움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고, 동년 수원의 전관왕 달성을 이끌었다. 특히 결정적인 승부처마다 결승골을 집어넣어, 결승골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붙기도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0년 여름, 비탈리는 일본 J2리그의 쇼난 벨마레로 이적하게 되는데..
안양, 부천 시절[편집]
이게 비극이었다. 쇼난 벨마레에서 비탈리는 5경기 1골만을 기록한뒤 십자인대 파열로 계약해지를 당하고 말았던 것. 여기에다 다시 K리그로 돌아왔을때는 이미 비탈리의 존재감은 잊혀졌던 상황. 비탈리는 에이전트와 함께 입단 테스트 팀을 모색했고, 부산 아이콘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결국 불합격하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안양 LG 치타스의 테스트를 받은 비탈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2군 경기에서 더블 해트트릭을 작성하면서 입단 테스트에 합격. 2001년 안양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비탈리는 안양에서 어깨 탈구 부상을 당했고, 9경기 2골이라는 성적으로 안양을 떠났다. 이후 2002년 부천 SK의 입단테스트를 받고 입단하였지만 이번엔 2002 아디다스 컵대회에서 무릎연골 파열을 당하면서 시즌아웃. 결국 컵대회 8경기 4골이라는 성적으로 K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말았다.
K리그 이후[편집]
2003/2004 시즌 고국으로 돌아간 비탈리는 Chornomorets Odessa팀에서 활약한 뒤 2005년 Dnister Ovidiopol 팀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현재는 개인사업 중이라고 한다.
플레이 스타일[편집]
90년대 중후반, K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엄청난 임펙트를 남긴 선수였다. 하지만 전북 시절에는 김도훈, 박성배 등 국내파 공격수들에게 포커스가 집중되면서 언론의 조명을 덜 받았고, 수원에 입단해서는 샤샤와 데니스에 비해서 살짝 낮은 지명도을 보유하였다. 하필 비탈리가 수원을 떠나간 뒤, 고데로 트리오가 유명세를 타면서 상대적으로 그 직전 기간에 활약했던 비탈리에게 포커스가 빗겨가기도..
에피소드[편집]
- 이 때 비탈리를 도와주었던 에이전트는 당시 전북에서 식당일을 하던 신지훈 씨였다. 그는 비탈리와 친구 사이로 지내다가 비탈리의 권유로 축구 에이전트의 길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 1996년 라데가 1시즌 10골 10도움을 기록할 때는 난리를 치던 언론들이 1999시즌 비탈리가 시즌 10골 10도움을 기록할때는 별다른 반응도 보이질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