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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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행은 1959년 창립되어 2002년 12월 하나은행과 합병된 은행이다. 1976년 한국신탁은행을 합병하여 서울신탁은행으로 이름을 사용하다가 1995년 다시 서울은행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서울은행 축구단을 운영하였으며, 1976년 8월 한국신탁은행을 합병하면서 서울신탁은행 축구단을 운영하다가 1994년 해체하였다. 대한축구협회 후원사로 FA컵의 타이틀 스폰서이기도 하였으며, 2000년에는 축구단을 재창단하기도 하였다.


서울은행[편집]

서울은행
(1959,1962)[1]
서울신탁은행
(1974)
서울은행
(1995)
하나은행
(2002)
한국신탁은행
(1969)[2]


연혁[편집]

  • 1959년 지방은행으로 서울은행 창립
  • 1962년 전국은행으로 인가, 발족, 신탁업무 개시
  • 1969년 8월 10번째 금융단 축구단 창단
  • 1970년 신탁업무 정지
  • 1976년 8월 한국신탁은행을 흡수합병하여 서울신탁은행으로 상호변경
  • 1994년 5월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해체
  • 1995년 서울은행으로 상호 변경 및 CI 변경
  • 2000 ~ 2001년 FA컵 메인스폰서
  • 2002년 12월 12일 하나은행과 합병


축구단[편집]

서울은행 축구단 (1969년 8월 ~ 1976년 8월)[편집]

서울은행 축구단은 1969년 8월 창단하며 금융단 축구리그에 10번째로 참가하는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창단 당시 국가대표 출신으로 유명했던 홍덕영 씨를 코치로 선임하고, 당대 국가대표였던 변호영, 허윤정, 박병주 등 유수의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데도 성공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제2회 대통령배 금융단축구대회부터 참가해, 1972년 제 4회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하였다. 그 뒤 1976년 8월, 서울은행이 한국신탁은행을 합병하여 서울신탁은행이 되면서 자연스레 양쪽 은행이 운영하던 축구팀도 합병하여 서울신탁은행 축구단으로 재창단되었다.


주요 성적[편집]



선수단[3][편집]


72년 대통령배 금융축구대회 우승 당시 서울은행 선수단 기념 촬영 (ⓒ월간축구 1972년 11월호)
포지션 이름 출신 학교 현 소속팀
스탭진
단장 이항 ? 작고
감독 최병식 ?
코치 홍덕영 보성전문
선수단
GK 변호영 연세대학교 홍콩재한인회 고문
이준옥
FB 오승규 고려대학교
정도식
조정수 성균관대학교
박병주
김미중 전남사범대학
김종호 한양대학교
김전영 경희대학교
부승언 경희고등학교
안경락 동북고등학교
박영남 광주상업고등학교
서이남 광주고등학교
FW 임국찬 경희대학교
채근영
유홍선
최황집 고려대학교
허승표 연세대학교
허윤정 공군사관학교
이원준 경남상업고등학교

※ 현 소속팀은 2016년 8월 1일 기준입니다.


서울신탁은행 축구단 (1976년 8월 ~ 1994년 5월)[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신탁은행입니다.

서울신탁은행은 서울은행이 한국신탁은행을 흡수합병하여 만들어진 후 20년 후 다시 서울은행 상호로 환원한 시기의 서울은행의 역사이나 서울신탁은행 축구단은 기존 서울은행 축구단의 역사의 승계라기 보다는 한국신탁은행과의 서울은행 두 팀의 합병으로 탄생한 별도의 축구단으로 취급한다. 서울은행이 한국신탁은행을 합병하였으나 서울은행 축구단보다 한국신탁은행 축구단의 전력이나 성적이 더 좋았기도 했고 약칭도 기존 한국신탁은행의 약칭인 신탁은행, 탁은으로 불리던 애매한 상황이었다. 다시 서울은행으로 상호를 환원한 이유 중 하나였을 듯.. 여하간 서울신탁은행 축구단은 수퍼리그 창단 후 은행 팀들이 잇달아 해체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아 주택은행, 국민은행 등과 더불어 실업 축구팀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갔으나, 1994년 해체되었다.


서울은행 축구단(2000년 재창단)[편집]

서울은행 축구단은 2000년 1월 6일 서울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재창단되었던바 있다. 하지만 이는 2002 한일월드컵 공식은행 지정을 앞두고 국민은행과 9함께 해체되었던 실업축구단 재창단을 선언했던 것이라, 월드컵 공식은행으로 선정되려는 용도로 축구팀 만드는거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은행 측의 기대(?)와 달리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후원금 약정 액수만을 기준으로 2002 월드컵 공식은행을 선정하기로 결정했고 제안서에서 가장 적은 액수를 적어낸 서울은행은 제안서를 제출한 4개 은행 중(서울, 주택, 외환, 조흥) 중 가장 먼저 탈락해버렸다. 결국 서울은행은 공식은행 지정 탈락 후, 재창단했던 실업축구단을 2000년 한해만 운영한 뒤 해체해버리며 위의 곱지않은 시선이 사실임(?)을 자인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래저래 저 팀에 들어갔던 선수들만 불쌍하게 된 셈.. 결국 2002 월드컵 공식 지정 은행은 주택은행이 선정되었다. [4][5]


축구 스폰서 활동[편집]

  • FA컵 타이틀 스폰서 -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대한축구협회의 스폰서 및 FA컵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기도 하였다. 스폰서 비용은 2억원. 이후 2002년에는 2006년까지 스폰서 계약을 연장했으며, 하나은행과의 합병이 결정된 이후에는 '서울-하나은행' 명칭으로 FA컵 스폰서를 도맡았다. 2003년부터는 하나은행 명의로 2014년 현재까지 FA컵의 타이틀 스폰서를 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1959년 서울지방의 지방은행으로 설립되어 1962년 전국은행(시중은행)으로 전환되었다.
  2. 기존 신탁업무를 보던 조선신탁은행이 한국상공은행과 합병하여 한국흥업은행/한일은행으로 개편되면서 새롭게 신탁업무를 보는 은행으로 설립되었다.
  3. 1970년 기준. 괄호안은 출신 학교를 가리킨다.
  4. 국민-서울은행 축구팀 재창단 의미 -문화일보, 2000년 1월 5일-
  5. 박세직과 정몽준, 궁합이 안맞는다구? -주간동아, 2000년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