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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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형 (1911년 1월 21일 ~ 2003년 1월 29일)은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초대 선수이자 195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오랜 기간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한국 축구 역사 편찬 작업에도 김화집 씨와 함께 참여하는 등 여러 부문에서 족적을 남기셨다.


선수 시절[편집]

황해도 신천군 출생으로[1] 평양 숭실학교를 거쳐 서울 연희전문[2] 에서 활약하였다. 연희전문 입학 이전부터 명성이 높았기에, 연희전문 1학년 시절인 1935년부터 경성축구단의 일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36년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이후 1938년에는 함흥 축구단이 창단되자 스카우트되어 함흥의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하였으며,[3] 팀을 1939ㆍ1940년 2회 연속 메이지신궁경기대회 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1942년에 접어들면서 민족말살정책과 전시공출이 공공연화되면서 함흥 축구단은 와해되었고, 선수들마저 전쟁터로 끌려갈 상황에 처하자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 이영일 씨의 도움을 받아 매일신보 사내 축구팀을 만들고 선수들을 불러들여 한국 축구의 맥을 이어가는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조일양조 축구단에 몸담으면서 1948년 런던 올림픽대표로 발탁되어 본선 무대를 밟은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지도자 시절[편집]

1954년 FIFA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예선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일본을 꺽고 한국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놓는 수완을 발휘하였으며, 1956년 AFC 아시안컵에서도 감독으로 부임해 한국 팀을 아시안컵 초대 우승으로 이끌기도 하는등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다만 당시 대표팀 감독직은 대회를 앞두고 그때 그때 선임되는 임시 직함에 가까웠던지라, 감독 생활을 길게 이어가지는 못하였다.


은퇴 이후[편집]

지도자 생활을 정리한 뒤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경향신문 기자, 서울신문 체육부장 등의 직함을 맡았다. 더불어 대한축구협회 이사ㆍ체육인 동우회 총무ㆍ한국OB축구회 회장등을 역임하다, 2003년 1월 29일 향년 9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셨다.


에피소드[편집]

  • 1954년 FIFA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예선 참가를 놓고 설왕설래가 오가던차, 이승만 대통령에게 반드시 일본을 이기고 돌아오겠다. 만약 일본을 이기지 모하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 말해 아시아예선 출전 허락을 받아낸 장본인이 바로 이유형 감독이었다. 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는 지금도 축구계에 회자되는 명언 중 하나로 남아있다.
  • 이처럼 일본에 대해 필승 의지를 불태웠던 것은, 이유형 씨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이유형 씨의 부친, 이용규 씨는 신천군 내 사립학교 교장 겸 신천 청년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3.1 운동 이후에는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고..


참고[편집]

  1. 한국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용식 씨도 신천군 태생이며, 이유형 씨와는 동갑내기 친구로 같이 볼을 차는 사이였다고 한다. 덧붙여 이유형 씨는 훗날 연희전문에서 함께 활약하게 되는 위혜덕 씨와도 절친이셨다고..
  2. 연희전문에 입학한 계기가 다소 황당한데, 원래 이유형 씨는 숭실학교 졸업 후, 일본 체육학교에 입학한 뒤 일제 감시를 피해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할 생각이셨다고 한다. 그런데 평양 숭실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연희전문의 김성간, 정용식 씨가 졸업 축하 인사차 이유형 씨를 찾아왔고 이들을 배웅하려 평양역에 같이 갔던 이유형 씨는 둘에게 그대로 납치(...)되어 서울로 이동, 연희전문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유형 씨를 스카우트 해오기 위해 연희전문이 극약처방을 썼던 것. 이에 약이 오른(?) 보성전문민병대 씨를 비슷한 방법으로 납치해 보성전문에 입단시키게 된다.
  3. 당시 함흥 축구단의 스카우트 제의에 고민하다, 절친 김용식 씨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자네가 가서 팀을 강화시키는게 좋겠다'고 답해 함흥 축구단 행을 결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