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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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축구단
Newkorail.jpg
기본정보
정식명칭 대전코레일 축구단
이전이름 교통부축구단 (1945 ~ 1963)
철도청축구단 (1963 ~ 1995)
한국철도축구단 (1995 ~ 2002)
인천한국철도 (2003 ~ 2007)
인천코레일 (2008 ~ 2013)
대전코레일 (2014 ~ 현재)
클럽색      파랑
     빨강
창단년도 1943
홈경기장 한밭종합운동장
연고지 대전광역시
운영
운영법인 한국철도공사
감독 김승희
소속리그 내셔널리그
홈페이지 [1]
현재시즌
코레일 축구단 2018

코레일 축구단(Korail 蹴求團)은 한국철도공사에서 운영하는 실업축구단으로 1943년 창단된,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축구단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단이다. 과거에는 철도청 축구단, 한국철도 축구단 등 으로 불리웠으며, 인천을 연고지로 내셔널리그에 참여하며 인천한국철도 축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인천코레일 축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2013년 11월, 이듬해인 2014년부터는 대전광역시를 연고로 내셔널리그에 참가할 것임을 발표하면서 연고이전을 감행하였으며, 팀명도 대전코레일 축구단으로 변경되었다.



역사[편집]

1943년 조선철도축구단으로 창단되어, 광복 후 교통부축구단으로 개칭. 1963년에는 철도청 축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5,60년대 각종 축구대회는 군인팀이 주종을 이루던 시절, 철도청 축구단을 비롯하여 석탄공사, 한국전력, 대한중석 등이 실업 축구팀으로 활동하였던바 있다. 하지만 오랜 역사에 비해, 지원이 변변치 않아[1] 실업축구계에서 약팀으로 분류되었고, 코리안리그 시절 2부 리그에 소속되어있기도 하였다. 이후 1995년 철도청 축구단에서 한국철도 축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2007년 한국철도공사의 커뮤니케이션 명칭이 코레일로 통일되면서 코레일 축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선수단[2][편집]

프론트[편집]

코레일 축구단 (구단주 : 최연혜)
직책 성명 직책 성명
단장 김영래 부단장 장진복
운영처장 고범석 운영부장 강병인
축구부장 주기훈


스탭진[편집]

코레일 축구단
감독 대한민국 김승희
수석코치 대한민국 김찬석
코치 대한민국 이광진
팀닥터 대한민국 이상욱


선수단[편집]



이적 상황[편집]

시즌 개막전 이적 상황[편집]


중간 이적시장[편집]

기록[편집]

주요 성적[편집]

대회명 순위 연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준우승 2000
전국실업축구연맹전 우승 2000 (춘계)
준우승 1995 (추계), 1999 (추계)
내셔널리그 우승 2005, 2012
준우승
내셔널선수권대회 우승 2013
준우승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준우승 2004
전국실업축구선수권 우승
준우승
전국체전 우승 2000, 2001, 2011
준우승 2005, 2010


역대 시즌 기록[편집]

연도 내셔널리그 FA컵 리그컵 최다 득점자 감독
리그 참가팀 수 경기수 승리 무승부 패배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순위
2003 전기리그 10 9 3 4 2 14 10 +4 13 5위 1라운드 불참 이순행 (5) 이현창
후기리그 10 9 1 2 6 5 14 –9 5 9위
2004 전기리그 10 9 2 3 4 6 9 –3 9 7위 2라운드 조별예선 성낙선 (3)
후기리그 10 9 1 7 1 10 10 0 10 5위
2005 전기리그 11 10 4 1 5 10 11 –1 13 7위 4강 조별예선 김은철 (6)
후기리그 11 10 6 3 1 14 7 +7 21 1위
챔피언결정전 2 2 2 0 0 4 2 +2 6 우승
2006 전기리그 11 10 4 3 3 14 13 +1 15 6위 2라운드 8강 김흥섭 (9)
후기리그 11 10 7 1 2 25 13 +12 22 2위
2007 전기리그 12 11 7 1 3 16 10 +6 22 3위 1라운드 4강 김민수 (8) 김승희
후기리그 12 11 6 2 3 20 18 +2 20 3위
2008 전기리그 14 13 2 3 8 12 21 –9 8 12위 1라운드 4강 박천신 (5)
후기리그 14 13 3 3 7 13 24 –11 12 12위
2009 전기리그 14 13 6 5 2 20 13 +7 23 3위 1라운드 조별예선 허신영 (8)
후기리그 13[3] 12 5 1 6 11 15 –4 16 7위
2010 전기리그 15 14 7 5 2 23 17 +6 26 3위 32강 조별예선 김형운 (9)
후기리그 15 14 2 5 7 17 21 –4 11 13위
2011 단일리그 14 26 11 6 9 29 23 +6 39 6위 1차예선 4강 박주호 (6)
6강 플레이오프 6 1 0 0 1 2 3 –1 0 1차 플옵 탈락
2012 단일리그 14 26 12 6 8 39 30 +9 42 5위 32강 조별예선 김태욱 (7)
6강 플레이오프 6 5 5 0 0 11 4 +7 15 우승


역대 주요 인물[편집]

이름
맹광섭, 이현창, 김승희, 김찬석, 이광진, 이을용, 김민수


구단 제반사항[편집]

엠블럼[편집]


마스코트[편집]


홈구장[편집]

2003년 K2리그 (내셔널리그) 참가 이후, 2007년까지는 숭의종합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인천광역시의 도시재생사업으로 해당 구장이 철거된 후, 2008년부터 한시적으로 인천문학경기장 보조구장을 사용하였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인천 유나이티드숭의아레나파크로 홈구장을 이전함에 따라 인천문학경기장 주 경기장을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2014년 1월17일부로 코레일 축구단이 대전광역시로 연고지를 옮김에 따라, 코레일 축구단의 새 홈구장은 대전한밭운동장이 되었다.


홈페이지[편집]

  • [2]
    (여기는 정보를 모으는 위키이지 코레일 축구단 공식사이트가 아닙니다. 개별 문의사항이나 항의건은 옆의 링크를 클릭하셔서 나오는 전화번호로 전화하시길 바랍니다.)


에피소드[편집]

  • 한국축구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팀이지만, 동시에 숱한 해체설을 겪었던 팀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무렵 한국철도 축구단일 당시, 선수들의 월급여는 80만원에 불과해 사실상 일용직 노동자 대우를 받았으며 변변한 재정적 지원도 받지못한채 용산역 사무소 단칸방을 빌려 선수단 숙소를 쓰는 열악한 환경 속에 처하기도 했다.[5]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각급 대회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둬 1997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팀 해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2005년 인천한국철도 축구단으로 팀명이 개칭된 후, 또다시 팀해체 얘기가 도마에 올랐으나 2005년 K2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천한국철도가 우승을 거두면서 해체 얘기가 쏙 들어가기도 하였다.
  • 이처럼 열악한 팀 사정 때문인지, 선수가 대회 도중 행방불명(!)되는 사고도 있었다. 1967년 초 진주농고(오늘날 경남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하영석 선수가 동년 11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일정 도중, 선수단을 이탈해 소식이 끊겼던 것.[6] 이에 맹광섭 당시 철도청 감독은 경찰서에 수배를 의뢰하기도 하였는데.. 실상을 알고보니 고려대학교 축구부가 하영석 선수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대회에 참여 중이던 그를 지프에 태워 사라졌던 것이었다고 한다.[7] 결국 사건은 유야무야되어 하영석 씨는 1968년부터 고려대학교 소속으로 활약하였는데.. 결국 월급 받고 철도청 선수로 뛰는 것보다, 고려대학교 학생으로 뛰는게 더 낫다는게 대외적으로 공인된 셈이 되버렸다. 안습..
  • 최고(最古)의 축구팀답게 레전드도 숱하게 배출한 팀이다. 특히 원클럽맨 들의 면모가 상당한데, 일례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맹광섭 전 철도청 감독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철도청 감독으로 활동하였고, 이현창 전 코레일 축구단 감독의 경우는 무려 34년간 코레일에 몸담았던바 있다. 이어 이현창 감독이 1995년부터 육성한 김승희, 김찬석, 이광진 콤비는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현재까지 코레일 축구단의 스탭으로 활약 중이다.. 김승희 현 코레일 축구단 감독의 근속년수는 23년에 달하며, 김찬석 수석코치와 이광진 코치의 근속년수도 20년을 훌쩍 넘은 상태다.. 요컨대 원클럽맨 예우에 가장 모범적인 팀이라 할만하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어느 정도였냐면, 1970년대 철도청 축구단은 평상시에는 소속 선수들이 서울 시내 각 역사 내 역무원으로 배치되어 근무를 하다가, 실업축구대회를 앞두었을때에만 용산 철도회관에 모여 합숙훈련을 짧게 진행한뒤 대회에 참가하는 실정이었을 정도. 이런 상황이니 최소한 오전 근무, 오후 훈련이 보장되었던 다른 실업축구팀보다 성적이 안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어 1990년대에는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는 에피소드 부문 참고.
  2. 2014년 현재 기준이다.
  3. 2009 후기리그에는 이두 FC가 불참하여 13팀만 참가하였다.
  4. 과거 코레일의 마스코트로 코레일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되자 축구단의 엠블럼도 바뀌게 된다.엠블럼은 새로 제작은 됐지만 축구단의 새로운 마스코트는 발표되지 않았기에, 치포치포가 현재의 공식 마스코트라 볼 수 있다.
  5. 이 때를 두고 이현창 감독은 '1970년대 자신이 철도청 축구단에서 뛸 때보다 환경이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라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6. 경기 도중 실종된 것은 아니고, 1일차 경기를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숙소에서 이탈되어 돌아오질 않았다고 한다.
  7. 보통 고교 졸업자를 이런 식으로 납치(?!)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196ㆍ70년대 횡행하긴 했지만, 실업 축구 선수를 납치하는건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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