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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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대표팀 시절 정병탁(가운데)

정병탁(1942년 3월 14일 ~ 2016년 2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프로필[편집]

  • 이름 : 정병탁
  • 출생일 : 1942년 3월 14일
  • 사망일 : 2016년 2월 10일
  • 신체 : 173cm / 64kg (선수 시절)
  • 국가대표 경력
1964년 AFC 아시안컵 본선 대표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64년 ~ 1970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36경기 출장 11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지도자 경력
연도 소속팀 직책
1984 ~ 1992 연세대학교 감독
1986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
1995 ~ 1996.5 Teamlogo jdfc.png 전남 드래곤즈
1995.9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1]


  • K리그 감독 기록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Teamlogo jdfc.png 전남 드래곤즈 1995 9 10 16 5위 8위 미개최
1996 1 2 7 중도 사임
통산 (K리그) - 10 12 23 -


유소년 시절[편집]

전남 여수 출신으로 여수서국민학교, 여수중학교, 서울 배재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국민학생 시절부터 볼을 잘차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으나 당시 여수 지역에는 축구부가 없었던 관계로 제대로 된 축구 교습을 받지못하던차, 배재고등학교 출신인 이종덕 씨의 스카우트로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에 이른다. 이후 민병대 코치의 조련을 받아, 배재대의 골게터로 성장한 정선수는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의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연세대 1학년 시절 소속팀을 추계군ㆍ실업ㆍ대학종합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대활약을 선보여 196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하였다.[2] 이후 대표팀과 연세대 축구부를 오가는 바쁜 생활을 영위하다 1967년 2월 졸업하였다.


성인 선수 시절[편집]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해병대 축구단에 입대하며 군복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해병대는 이이우김호 등 기존 선수 외에, 67년 군번으로 정병탁 선수 외 금성방직박수일고려대김정남경희대유홍선ㆍ연세대의 이승안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대거 입단시키는데 성공, 당대 최강의 군인 축구팀으로 군림하는듯 했는데.. 1967년 2월 양지 축구단이 창단되면서 위 멤버 대부분을 양지 쪽에 빼앗기게 된다. 이 때 정선수도 양지 축구단에 입단해 총 3년동안 활동하였으며 1970년 1월, 양지를 떠나 신탁은행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신탁은행 입단 1개월 여만인 1970년 2월 청룡 대표팀에 차출되어 태능 선수촌에 입소, 청룡 대표팀의 초대 주장을 맡아 1970년 9월까지 활약한 뒤 신탁은행 축구단으로 돌아왔다. 이후로는 신탁은행 행원 겸 선수로 활동하다 1972년 은퇴하였다.


국가대표 시절[편집]

배재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던 정선수는, 상기한바와 같이 연세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였다. 양지 축구단 소속 시절에도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다 양지 축구단이 해단된 뒤에는 청룡 대표팀에도 차출, 한홍기 당시 대표팀 감독에 의해 초대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이후 1970년 8월 메르데카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체력상의 문제 등을 이유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동년 9월 청룡 대 벤피카 간 친선 매치를 끝으로 대표팀을 떠났다.[3]


지도자 시절[편집]

신탁은행 사원으로 활동하며 지도자 생활과 연을 맺지 못하던 정씨는, 1984년 5월 김인권 감독의 후임으로 연세대학교 축구부 지휘봉을 잡았으며, 부임 첫해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1989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우승 등을 기록하는 등의 족적을 이어가다 1993년을 앞두고 김호곤 감독에게 연세대 감독 자리를 넘기고 물러났다. 이후 1995년 전남 드래곤즈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해, 노상래김인완김봉래 등을 앞세워 기술 축구를 시도하였으나 1996년 5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물러났으며 이후로는 순천ㆍ여수 등지에서 정병탁 축구교실 등을 운영하였다.


사망[편집]

2016년 2월 10일 새벽 숨을 거두었다. 향년 74세.


에피소드[편집]

  • 학생 시절 운동ㆍ학업 모두에서 두각을 보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걸은 뒤에도 영어 공부만큼은 손에서 놓질 않아, 당시 대표팀 선수들 중에 가장 뛰어난 영어 실력을 자랑하였다는 후문.
  • 연세대 감독 시절이던 1987년 1월 23일,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가다 마주오던 버스와 정면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겪은바 있다. 이 사고로 정씨는 자신의 부인을 잃었으며 본인도 중상을 입어 상당 기간 치료를 받았던바 있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참고[편집]

  1. 대한민국 대 보카주니어스 친선 매치 1경기만 지휘하고 물러났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박종환(코리아컵)→허정무(브라질 초청경기)→정병탁(보카주니어스 초청경기)→고재욱(사우디 초청경기) 등에 K리그 감독들을 초빙해, 1경기만 시험적으로 써보고 떠나보내는 희한한 대표팀 운영 방식을 구사하고 있었다. 다행히 감독들이 K리그와 국가대표 감독직을 병행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했고, 언론의 비판도 빗발치자 이러한 실험은 막을 내리게 된다.
  2.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로 대표팀 내 최연소 선수였다.
  3. 여담으로 정병탁 선수가 청룡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었던 8개월여간 청룡은 무패의 기록을 이어갔던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