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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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업(朝鮮電業)은 1943년 일제의 조선전력관리령에 의해 생긴 회사로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법으로 경성전기, 남선전기와 통합된 현재 한국전력의 발전 부분이다. 조선전업이 1945년 창단한 조선전업 축구단은 현재 내셔널리그에 경주한수원 축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선전업의 역사[편집]

조선전업은 태평양전쟁시기 일제가 발전시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943년 3월 공포한 조선전력관리령에 의해 그해 8월 2일, 조선수력전기, 조선송전, 부영수력전기 등 3사의 통합으로 탄생했다. 이후 8월 31일 북선수력전기를 통합한 후, 9월 20일, 조선전력, 강계수력, 한강수력, 남선수력 및 경전 수색~부평 간 154kV 송전선로를 매수하였다. 이후 44년 2월 26일 남조선수력을 합병하여 일제강점기 조선의 발전시설을 모두 통합한 회사가 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5년 9월 10일 미국 군정 관리관 얼빈 W.젠트리중위 취임했으며 9월 21일 일본인으로부터 사무접수 완료한 후 한국인인 윤일중(尹日重) 사장, 김은석(金恩錫) 부사장이 취임하였다.

당시 전체 발전량의 대부분이 북에서 생산되었으므로 북에서 전력을 끌어와 사용했는데 1947년 3월 소련군정이 남한에 대한 전기 공급료 500만 달러 청구, 이에 6월 미군정청 상무부장 오정수, 전업부사장 김은석 등이 평양을 방문하여 소련 군정당국과 전력공급료 지불에 관한 협정 체결했다. 그러나 47년 2차에 걸친 대북 전력대금 지불에 관한 남북전력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48년 5월 14일 북으로부터 전력이 단전되었다. 단전 당시 전체 발전량 중 남한 내에서의 자체 발전량이 12.4%에 불과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어 계획배전과 윤전제가 실시되게 되었다. 이후 1949년 대통령 특별유시로 발전사업 일원화 조치가 취해져 남선전기, 경성전기 등의 회사와 농림부, 상공부 등에서 진행하던 발전사업이 조선전업으로 일원화 되었다.

이후 전력사업이 조선전업(발전)과 경성전기(중부배전), 남선전기(남부배전)로 나뉘어져 생산성 저하, 생산비 증대 등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에 따라 1961년 의결된 '한국전력주식회사법’에 따라 한국전력주식회사로 3사가 통합되었으며, 1973년 석유파동이후 발전원료비의 상승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라 민간주식을 정부가 매입하여 1981년 한국전력공사가 되었다. 1989년에는 한국전력공사법이 일부 개정되어 주식 일부를 상장하였으며, 2000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법'의 통과로 2001년 발전부문이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의 자회사로 분리되었다. 즉 현재 존재하는 발전부분의 6개 자회사 모두 조선전업의 후신이라 할 수 있다.


조선전업 축구단[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입니다.

조선전업 축구단은 1946년 김용식 씨의 주도 아래 창단되어, 일제강점기 축구계에서 활약하였던 박규정, 박대종, 민병대 등을 스카우트해오고 최성곤, 배종호, 정남식 등 젊은 선수들을 초빙해와 조일양조와 더불어 한국에 유이한 실업축구팀으로 당대에 군림하였다.[1] 하지만 창단 4년여만에 터진 6.25 사변으로 조선전업 축구단은 와해되고 말았고, 이후 1962년에 가서야 한국전력 축구부로 재창단을 맞이하게 된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1948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 대표팀은 총 17명 중 10명이 조선전업 소속이었던 것으로도 당대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