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1973년부터 [[체육특기자]]에 대한 배정<ref>1963년부터 시작된 체육특기자 제도가 73년도에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는데 체육특기자들을 반강제적(?)으로 각 학교에 입학시키라는 조치였다. 강제성은 띄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군사정권에서의 권유는 강제성을 띄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동부가 생겼는데 가장 선호된 것이 추가 시설이 필요없는 육상부였으며 그 다음이 인기 있는 구기종목이었다. 강제로 시작되었지만 권역별 배정으로 인해 서울의 유명 학교 운동부의 지방 우수 선수 스카우트가 없어지면서 지방의 학교 운동부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의 경우 이 조치로 인해 청구고, 협성고, 대륜고, 계성고에 축구부가 생기기 되었다.</Ref>이 시작되면서 73년말 다시 축구부 창단을 선언하며 부활했다. | 그러다 1973년부터 [[체육특기자]]에 대한 배정<ref>1963년부터 시작된 체육특기자 제도가 73년도에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는데 체육특기자들을 반강제적(?)으로 각 학교에 입학시키라는 조치였다. 강제성은 띄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군사정권에서의 권유는 강제성을 띄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동부가 생겼는데 가장 선호된 것이 추가 시설이 필요없는 육상부였으며 그 다음이 인기 있는 구기종목이었다. 강제로 시작되었지만 권역별 배정으로 인해 서울의 유명 학교 운동부의 지방 우수 선수 스카우트가 없어지면서 지방의 학교 운동부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의 경우 이 조치로 인해 청구고, 협성고, 대륜고, 계성고에 축구부가 생기기 되었다.</Ref>이 시작되면서 73년말 다시 축구부 창단을 선언하며 부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