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0 바이트 추가됨
, 2011년 11월 7일 (월) 18:50
[[File:최진철.jpg|200픽셀|섬네일|국가대표 시절 최진철]]
'''최진철'''(1971년 3월 26일~)은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수비수이다.
== 프로필 ==
* 이름 : '''최진철'''
{{col-begin}}
{{col-3}}
* [[K-리그 등록명|등록명]] : 최진철
* 출생일 : 1971년 3월 26일
* 유스클럽 : [[숭실대학교]] 졸업
* 신체 : 187cm / 77kg
* 수상 경력
: 2002, 2003, 2006 [[K리그 시즌 베스트 11]] DF 3회 수상
: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MVP 수상
: 2007년 K리그 대상 공로상 수상
* 국가대표 경력
: 2002년 북중미 골드컵 대표
: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표
: [[2004년 아시안컵]] 대표
: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표
: (통산 A매치 65경기 출장 4골)
* 포지션 : [[센터 포워드]](스토퍼), [[스트라이커]]
* 현 소속팀 : 은퇴
* [[등번호]] : -
{{col-3}}
* 리그 기록 (실업 포함)
:{|class="wikitable"
|-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 [[전북 다이노스]] || 1996 || 29 || ||1||1||6||0
|-
| [[전북 현대 다이노스]] || 1997 || 21 || ||2||0||6||0
|-
| [[전북 현대 다이노스]] || 1998 || 27 || ||8||2||5||0
|-
| [[전북 현대 다이노스]] || 1999 || 35 || ||9||6||3||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0 || 32 || ||3||0||7||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1 || 25 || ||0||0||6||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2 || 24 || ||0||1||5||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3 || 33 || ||1||1||7||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4 || 21 || ||2||0||11||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5 || 30 || ||1||0||9||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6 || 20 || ||1||0||5||0
|-
| [[전북 현대 모터스]] || 2007 || 15 || ||0||0||5||1
|-
! 통산 ([[K리그]]) || - ||312 || ||28||11||75||1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11월 7일 기준
{{col-end}}
== 유소년 생활 ==
전남 진도 출생으로, 제주중앙중과 [[오현고등학교]]를 거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공격수였으나, 숭실대에 입학하면서 감독의 제의를 받아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포지션을 변경한 후 골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안정적인(?) 포지션이라고 생각하여, ''이게 내 자리였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숭실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상무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하였는데, 상무 시절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A매치에 데뷔하지 못한 채 벤치를 지켰다.
== 프로 생활 ==
1996년 군복무를 마치고 상무에서 전역할 예정인 시점부터 이미 [[스카우터]]들에게 차세대 대형 수비수 재목으로 관심을 나타내는 구단이 많았다. 그리하여 [[1996년 드래프트]]에서 [[전북 다이노스]]에 1순위로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당당한 체격의 수비수로 데뷔 시즌부터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7년부터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 이름을 올려 A매치 데뷔경기도 치렀지만 결국 최종 명단에서는 탈락하였다.
한편 1998년 시즌 초 전북의 공격수인 [[김도훈]]이 J리그로 2년간 임대를 가게 되었는데, [[최만희]] 감독은 마침 187cm의 장신에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공격수로 뛴 경험이 있는 최진철을 주전 공격수로 낙점하게 되고 김도훈이 없는 두 시즌 동안 공격수로 활약하게 된다. 느린발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공중볼 제압 능력과 의외로 날카로운 슈팅 능력을 보여주었고 두 시즌간 17골 8도움을 기록하여 공격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다. <del>역시 되는 선수들은 뭘 시켜도 잘하는 듯</del>
2000년 김도훈이 전북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다시 수비수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호제리오1|호제리오]] 등과 발을 맞추며 취약점으로 지적받던 수비진을 조직적이고 끈끈한 수비진으로 재탄생 시키게 되었다. 이 시즌에 창단 후 최초로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는 등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겨울에는 [[FA컵]]에서 우승하며 팀의 최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ref>이후 인터뷰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경기가 2000년 FA컵 결승과 2006년 ACL 결승이었다고 할 정도로 첫 우승의 의미가 컸다.</ref>
그리고 2001년 무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은 유럽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과 체격을 가지고 있는 수비수들을 찾고 있었는데 여러 선수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여 테스트 하던 중 다른 선수의 부상으로 합류한 최진철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결국 주전 수비수로 낙점 받게되어 앞선 두 월드컵에서 예선에는 출장했으나 아쉽게도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 마침내 월드컵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역사에 남을 사상 최강의 수비진을 구성하며 당시 비에리 클로제 등등의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전담 마킹하며 월드컵 4강 진출의 숨은 공로자가 되었다.
이미 2004년 아시안 컵이 끝난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6년 월드컵 예선을 치르던 중 답이 없던 수비진을 구원할 수비수가 필요함에 따라 최진철을 다시 국가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기용하게 되었는데 당시 한국축구의 대세가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넘어감에 따라 최진철도 포백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바로 다음 경기부터 적응. (<del>역시 되는 선수들은 뭘 시켜도 잘하는 듯</del>) 월드컵대표팀의 맏형으로서 다시금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2006년 전북에서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MVP를 수상하였다. 팀의 역사와 함께 해왔던 그였기 때문에 우승의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 시즌 종료후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지도자 연수를 준비하여 1년동안 지도자 연수를 받게 되었고 동시에 2008년 전주시에 최진철축구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2009년부터 신생팀인 [[강원 FC]]의 수비 담당 코치를 맡고 있다.
== 플레이 스타일 ==
포백에서는 센터백, 스리백에서는 왼쪽 스토퍼가 주 포지션이었다. 187cm의 당당한 체격으로 강력한 제공권 제압 능력을 지닌데다, 수비 위치선정 까지 좋아 1:1 마킹에서는 당할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발이 느린편임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는데,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하며 괴물같은 공격수들을 상대했으니 노련미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었을 정도. 특히 '''[[최진철]] - [[홍명보]] - [[김태영2|김태영]]''' 3백라인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라인이라 평가받고있다. 참고로 수비수로 뛰던 시절에도 간간이 스트라이커 포지션으로 올라와 공격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 에피소드 ==
* 2010년 월드컵 당시 모 통신사 광고에서 [[황선홍 밴드]]의 서브 보컬(?)로 데뷔하여 화려한 가창력을 선보였는데......
== 경력 ==
* 1994 ~ 1995 : 상무
* 1996 ~ 2007 : [[전북 현대 모터스]] / K리그
== 같이 보기 ==
== 참고 ==
<references/>
== 외부 링크 ==
[[분류:1971년생]][[분류:오현고등학교의 선수]][[분류:연세대학교의 선수]][[분류:1996년 드래프트 지명자]][[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선수]][[분류:전설적인 선수]][[분류:지도자]][[분류:원클럽맨]][[분류:프랜차이즈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