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창단 멤버로 입단한 고종수와 데니스는 수원의 미드필더에서 핵심 자원으로 활동하였고, 수원은 둘의 볼배급을 시발점으로 공격을 전개해 나가고 있었을정도로 둘의 활약은 어마어마 했지만, 스트라이커 자원은 1999년 샤샤을 제외하곤 이 둘에 비하면 활약도가 다소 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 |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창단 멤버로 입단한 고종수와 데니스는 수원의 미드필더에서 핵심 자원으로 활동하였고, 수원은 둘의 볼배급을 시발점으로 공격을 전개해 나가고 있었을정도로 둘의 활약은 어마어마 했지만, 스트라이커 자원은 1999년 샤샤을 제외하곤 이 둘에 비하면 활약도가 다소 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
− | 이 문제는 2000년 후반기에서야 비로소 해결이 되었는데, 해결사는 바로 산드로C였다. 2000년 7월 샤샤의 대체자원으로 수원에 합류한 산드로C는 후반기만 뛰고도 5골 4도움을 몰아치며 앞으로의 활약을 예고하였고, 2001년 비로소 '''고-데-로 트리오'''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해 산드로는 17골을 몰아치면서 정규리그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고종수와 데니스는 각각 10골 6도움과 7골 3도움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성남 일화 천마]]에게 밀려 정규리그 3위에 그쳤지만,<ref> 이때부터 수원의 3위 징크스는 시작되었다. </ref> 아디다스 컵 우승과 제20회 아시안클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001 아시아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고데로 트리오의 위력을 확인시켜주었다. 2002년에는 고종수가 십자인대 부상 여파로 주춤했지만, 고데로 트리오는 다시한번 위력을 발휘 21회 아시안클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002 아시아 슈퍼컵 우승, FA컵 우승을 일구어내며 수원이 아시아의 명문구단으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게 되었다.
| + | 이 문제는 2000년 후반기에서야 비로소 해결이 되었는데, 해결사는 바로 산드로C였다. 2000년 7월 샤샤의 대체자원으로 수원에 합류한 산드로C는 후반기만 뛰고도 5골 4도움을 몰아치며 앞으로의 활약을 예고하였고, 2001년 비로소 '''고-데-로 트리오'''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해 산드로는 17골을 몰아치면서 정규리그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고종수와 데니스는 각각 10골 6도움과 7골 3도움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성남 일화 천마]]에게 밀려 정규리그 3위에 그쳤지만,<ref> 이때부터 수원의 3위 징크스는 시작되었다. </ref> 아디다스 컵 우승과 제20회 아시안클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001 아시아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고데로 트리오의 위력을 확인시켜주었다. 2002년에는 고종수가 십자인대 부상 여파로 주춤했지만, 고데로 트리오는 다시한번 위력을 발휘 21회 아시안클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002 아시아 슈퍼컵 우승, FA컵 우승을 일구어내며 수원이 아시아의 명문구단으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게 되었다. |
| 하지만, 2003년 팀 리빌딩을 천명한 [[김호]] 감독은 고데로 트리오를 모두 내보내는 초강수를 두었고, 이에 고종수와 산드로C는 각각 J리그의 교토 퍼를상가,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로 데니스는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면서 고데로 트리오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 | 하지만, 2003년 팀 리빌딩을 천명한 [[김호]] 감독은 고데로 트리오를 모두 내보내는 초강수를 두었고, 이에 고종수와 산드로C는 각각 J리그의 교토 퍼를상가,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로 데니스는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면서 고데로 트리오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