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K 네프치 페르가나]]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카파제는 [[FC 파흐타코르 타슈켄트]]를 거쳐 [[FC 분요드코르]]에 입단하였다. 12년간 우즈벡리그에서 활약하며 225경기에 출장해 46개의 골을 기록하였고,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등 '우승 제조기'라는 별칭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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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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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인연도 깊은데 2005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샤츠키흐]]와 함께 한국을 거세게 몰아붙여 한국을 탈락 직전까지 몰아가기도 하였다. 2007 아시안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 같은 조의 중국을 극적으로 탈락시키는 골을 기록하는 등 국가대표로도 많이 활약하였다. 2008 AFC 올해의 선수 후보에도 오르는 등 명성을 쌓았고, 2009년에는 포항과의 ACL 4강 티켓을 두고 다투기도 하였다. 2011 아시안컵에서도 [[제파로프]]와 짝을 이루어 4위에 오르는 활약을 선보였고,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으로 풀리자 [[FC GS]]에서 뛴 바 있는 [[제파로프]]의 추천으로 인천의 오퍼를 받아들여 K리그에 오게 되었다. 땡큐 제파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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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서의 K리그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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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대를 등에 업고 인천에 입단한 카파제, 당초 [[허정무]] 감독은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 위해 데려왔지만, 생각 이상으로 공격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깨닿고 그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였다. 대전과의 컵대회에서 데뷔골을 넣은 카파제는 이후 자신의 공격 성향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정혁]]등이 부상으로 이탈한 인천의 미들을 이끌었다. [[유병수]]의 부상과 [[루이지뉴]], [[유준수]]의 부진이 겹치면서 쓸만한 스트라이커가 모자르게 되자 아예 공격수로도 뛰는 등 멀티플레이어로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5골 3도움이라는 나름 준수한 활약으로 2011 시즌을 마감하였다.
== 플레이 스타일 ==
== 플레이 스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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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더 볼에서 그의 모습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으나 일단 공을 잡으면 인천의 그 어떤 선수보다도 무서운 선수가 된다. 시야가 넓고 매우 날카로운 패스를 가지고 있으며, 준수한 개인기를 지니고 있어 수비 한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제칠 수 있다. 또한 헤딩능력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다. 다만, 슛을 지나치게 아끼는 편이다.
== 에피소드 ==
== 에피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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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수]]는 카파제를 보고 "완벽한 프로의식을 지닌 선수"라고 극찬한 바 있다. 확실히 이것저것 다양한 포지션을 불만없이 잘 소화해 내는 것을 보면 프로의식은 정말 훌륭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