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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지명되어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원래 포지션은 왼쪽 윙백으로서 [[전재호]]의 대체자로 기용되었으나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그런 불안한 시선을 서서히 바꿔나가는 계기가 있었으니..
 
[[2009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지명되어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원래 포지션은 왼쪽 윙백으로서 [[전재호]]의 대체자로 기용되었으나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그런 불안한 시선을 서서히 바꿔나가는 계기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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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코비치]] 감독 체제 하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던 인천은 창단이래 1승밖에 거두지 못했던 [[수원]]과 원정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전재호]]의 경고누적으로 인해 [[장원석]]이 선발로 투입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상황. 그러나 장원석은 후반 [[이준영]]의 헤딩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그 골을 혼전중에서 밀어넣으며 데뷔골을 성공시킨 것. 이 골은 4년만에 수원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게 해 주었다. (2-1 승리) 이런 활약에 장원석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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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코비치]] 감독 체제 하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던 인천은 창단이래 1승밖에 거두지 못했던 [[수원]]과 원정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전재호]]의 경고누적으로 인해 장원석이 선발로 투입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상황. 그러나 장원석은 후반 [[이준영]]의 헤딩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그 골을 혼전중에서 밀어넣으며 데뷔골을 성공시킨 것. 이 골은 4년만에 수원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게 해 주었다. (2-1 승리) 이런 활약에 장원석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바뀌었다.
    
결정적으로 모두의 시선을 바꾸게 된 것은 [[FC GS]]와의 홈경기. 장원석은 이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출장하여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이며 [[GS]]의 미드필더들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맹활약을 선보인다. 그러나 단 한순간, [[송유걸]]과 볼 처리를 어물어물하게 하다가 [[이승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하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장원석에게 비난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정도로 장원석의 그날의 플레이는 엄청났고, 앞으로 대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해 주었다.<ref>참고로, 인천이 이런 식으로 진 경기가 2009년에 유독 많았다. 괜히 인천 지지자들이 인천을 가지고 잉천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ref>
 
결정적으로 모두의 시선을 바꾸게 된 것은 [[FC GS]]와의 홈경기. 장원석은 이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출장하여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이며 [[GS]]의 미드필더들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맹활약을 선보인다. 그러나 단 한순간, [[송유걸]]과 볼 처리를 어물어물하게 하다가 [[이승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하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장원석에게 비난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정도로 장원석의 그날의 플레이는 엄청났고, 앞으로 대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해 주었다.<ref>참고로, 인천이 이런 식으로 진 경기가 2009년에 유독 많았다. 괜히 인천 지지자들이 인천을 가지고 잉천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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