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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습생 신분으로 2군 경기장을 기웃거리던 장학영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안익수]] 당시 성남 2군 코치와의 만남이 그것. 안코치는 장선수의 성실함과 활동량과 공수 양면에 걸친 센스를 눈여겨보고, 사이드 풀백으로의 포지션 변경을 권유하였다. 당시 성남은 측면 수비수가 부족해서 중앙 미드필더를 측면 수비 자원으로 뛰게할 정도로, 포지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지역이었기 때문. 결국 안코치의 조언과 장선수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2004년 중반기부터 장학영 선수는 성남과 정식계약을 맺고, 1군 무대에 장선수를 출전시키기에 이른다.
 
이처럼 연습생 신분으로 2군 경기장을 기웃거리던 장학영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안익수]] 당시 성남 2군 코치와의 만남이 그것. 안코치는 장선수의 성실함과 활동량과 공수 양면에 걸친 센스를 눈여겨보고, 사이드 풀백으로의 포지션 변경을 권유하였다. 당시 성남은 측면 수비수가 부족해서 중앙 미드필더를 측면 수비 자원으로 뛰게할 정도로, 포지션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지역이었기 때문. 결국 안코치의 조언과 장선수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2004년 중반기부터 장학영 선수는 성남과 정식계약을 맺고, 1군 무대에 장선수를 출전시키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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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 2010년까지 성남에서 대활약. 성남팬들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복덩이나 다름없었고, 타팀 팬들은 어디서 저런 선수를 데려왔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del>대전 지못미..</del> 2006년에는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으나, 성남을 위해 국가대표도 반납할 정도로 팀 충성도도 높은 선수.<ref>당시, 핌 베어백 감독은 장학영을 호출했으나, 장선수는 부상이라 국가대표에 나갈수 없다며 차출을 고사했다. 그러고서 불과 4일뒤에 있었던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 핌 베어백을 엿먹였고, 이후 장선수는 국가대표와 인연이 멀어지게 된다.</ref> 2010년 5월까지 성남에서 꾸준히 활약하다가,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소집해제는 2012년 6월에 이루어진다는듯. 이 와중에 [[한상운]]의 트레이드 상대로 [[부산 아이파크]] 이적함에 따라 소집해제 이후에는 성남이 아닌 부산 선수단에 합류하게 된다. 은사인 안감독님 품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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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 2010년까지 성남에서 대활약. 성남팬들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복덩이나 다름없었고, 타팀 팬들은 어디서 저런 선수를 데려왔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del>대전 지못미..</del> 2006년에는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으나, 성남을 위해 국가대표도 반납할 정도로 팀 충성도도 높은 선수.<ref>당시, [[베어벡]] 감독은 장학영을 호출했으나, 장선수는 부상이라 국가대표에 나갈수 없다며 차출을 고사했다. 그러고서 불과 4일뒤에 있었던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출전. 핌 베어벡을 엿먹였고, 이후 장선수는 국가대표와 인연이 멀어지게 된다.</ref> 2010년 5월까지 성남에서 꾸준히 활약하다가,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소집해제는 2012년 6월에 이루어진다는듯. 이 와중에 [[한상운]]의 트레이드 상대로 [[부산 아이파크]] 이적함에 따라 소집해제 이후에는 성남이 아닌 부산 선수단에 합류하게 된다. 은사인 안감독님 품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셈.
    
* '''한상운 ( [[부산 아이파크]] ) <-> [[장학영]] + 15억 ( [[성남 일화 천마]] )'''
 
* '''한상운 ( [[부산 아이파크]] ) <-> [[장학영]] + 15억 ( [[성남 일화 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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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 스타일 ==
 
== 플레이 스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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