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방직 대구공장'''은 일제강점기 조선방직이 소유하고 있던 대구메리야스공장과는 별도의 공장으로 1940년 5월 일본계 자본에 의해 세워진 '''군시방적'''(郡是紡績,군제보세키) '''대구공장'''이 모태이다. 방적기를 3만5천여추 보유하고 있었으나 해방직후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불타버린 설비를 정비하여 1947년 조업을 재개하였다. 일본인 소유였던 이 공장은 미군정에 적산으로 접수되어 '''대구방적공사'''(大邱紡績公社)로 개칭되었다가 1949년 방직관계사업체 통합분리운영방침에 따라 조선방직에 통합되어 조선방직 대구공장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양 공장은 생산관리가 융합되지 않아 제품원가까지 다를 만큼 독자적으로 운영되다시피 했을 정도로 경영상 비효율적이었다. 통합되었으면서도 독자적으로 운영되다시피 했으므로 조선방직 대구공장이라는 정식명칭 외에도 '''대구방적''', '''대구방직''', '''대구조방''', '''조방대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 '''조선방직 대구공장'''은 일제강점기 조선방직이 소유하고 있던 대구메리야스공장과는 별도의 공장으로 1940년 5월 일본계 자본에 의해 세워진 '''군시방적'''(郡是紡績,군제보세키) '''대구공장'''이 모태이다. 방적기를 3만5천여추 보유하고 있었으나 해방직후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불타버린 설비를 정비하여 1947년 조업을 재개하였다. 일본인 소유였던 이 공장은 미군정에 적산으로 접수되어 '''대구방적공사'''(大邱紡績公社)로 개칭되었다가 1949년 방직관계사업체 통합분리운영방침에 따라 조선방직에 통합되어 조선방직 대구공장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양 공장은 생산관리가 융합되지 않아 제품원가까지 다를 만큼 독자적으로 운영되다시피 했을 정도로 경영상 비효율적이었다. 통합되었으면서도 독자적으로 운영되다시피 했으므로 조선방직 대구공장이라는 정식명칭 외에도 '''대구방적''', '''대구방직''', '''대구조방''', '''조방대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