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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떠난 김근철 선수는, 2006년 K리그 신생팀이었던 [[경남 FC]]에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 [[박항서]] 당시 경남 감독 역시 김근철 선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나, 박종환 감독과는 달리 스피드보다는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드리블과 개인기 훈련이 김근철 성향에 맞았는지, 박항서의 조련 아래 김근철 선수의 기량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기량 향상은 그대로 출장기록 증가와 개인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다.
 
대구를 떠난 김근철 선수는, 2006년 K리그 신생팀이었던 [[경남 FC]]에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 [[박항서]] 당시 경남 감독 역시 김근철 선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나, 박종환 감독과는 달리 스피드보다는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드리블과 개인기 훈련이 김근철 성향에 맞았는지, 박항서의 조련 아래 김근철 선수의 기량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기량 향상은 그대로 출장기록 증가와 개인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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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경남의 핵심 중앙미드필더로 자리잡으면서, [[김효일]] 선수와의 중원 장악 능력은 K리그에서 최고급으로 평가받았으며 중앙에서의 조직력 극대화는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경남 FC]]의 [[6강 플레이오프]]행 등을 이끄는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김근철 선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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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경남의 핵심 중앙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특히 [[김효일]] 선수와의 중원 장악 능력은 K리그에서 최고급으로 평가받았으며 중앙에서의 조직력 극대화는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경남 FC]]의 [[6강 플레이오프]]행 등을 이끄는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김근철 선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이처럼 경남에서 3년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김근철 선수에게 2009시즌은 악몽과 같았다. 시작전 까지만 해도 김근철 선수는 당연히 경남 베스트 11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김근철 선수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져갔던 것. 특히 김근철 선수가 이탈한 중앙 미드필더의 빈자리를 [[이용래]], [[안상현]] 선수가 훌륭하게 메워주면서 김근철 선수의 가치는 격감하고 말았다.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근철 선수는 자유계약 대상자로 팀을 떠나고 말았다.
 
이처럼 경남에서 3년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김근철 선수에게 2009시즌은 악몽과 같았다. 시작전 까지만 해도 김근철 선수는 당연히 경남 베스트 11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김근철 선수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져갔던 것. 특히 김근철 선수가 이탈한 중앙 미드필더의 빈자리를 [[이용래]], [[안상현]] 선수가 훌륭하게 메워주면서 김근철 선수의 가치는 격감하고 말았다.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근철 선수는 자유계약 대상자로 팀을 떠나고 말았다.
      
=== 부산 시절 ===
 
=== 부산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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