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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이트 추가됨 ,  2010년 6월 7일 (월) 20:12
손명섭 전 농협감독 2008년 7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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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각 금융단을 중심으로 축구팀이 대거 창단되고 기존의 [[금융단축구리그]]를 구성하던 은행팀들이 한국실업축구연맹에 가입함에 따라, 농협도 축구단을 창단하기를 결정한 것이 농협 축구단의 시작이었다. 농협은 축구 외에도 야구, 여자테니스 등 총 4개의 운동팀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1972년 각 금융단을 중심으로 축구팀이 대거 창단되고 기존의 [[금융단축구리그]]를 구성하던 은행팀들이 한국실업축구연맹에 가입함에 따라, 농협도 축구단을 창단하기를 결정한 것이 농협 축구단의 시작이었다. 농협은 축구 외에도 야구, 여자테니스 등 총 4개의 운동팀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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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권력층의 강압에 의해, 억지 춘양식으로 팀 수립을 결정했던 농협으로선, 축구단 운영에 그다지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였고, 때문에 창단 당시부터 금융권 축구팀 중 가장 지원이 열악한 팀중 하나로 악명이 높았다. 때문에, 국가대표급 선수를 보유한 적은 거의 없으나, 창단 당시부터 농협 축구단의 감독이었던 [[손명섭]] 감독의 노력으로, 1975년 금융단축구대회 우승과 1978년 각급 실업축구 4개대회 동시석권 등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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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권력층의 강압에 의해, 억지 춘양식으로 팀 수립을 결정했던 농협으로선, 축구단 운영에 그다지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였고, 때문에 창단 당시부터 금융권 축구팀 중 가장 지원이 열악한 팀중 하나로 악명이 높았다. 때문에, 국가대표급 선수를 보유한 적은 거의 없으나, 창단 당시부터 농협 축구단의 감독이었던 [[손명섭]] 감독의 노력으로, 1975년 금융단축구대회 우승과 1978년 각급 실업축구 4개대회 동시석권 등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 대한축구협회의 프로 축구리그 창설 움직임과 과거 금융단의 축구팀 창설을 주도했던 권력층이 5공화국 성립과 함께 사라짐에 따라, 농협보다 약간 앞서 해체했던 [[산업은행 축구단]]을 선례로 삼아, 1980년 12월 농협 축구단도 연간 2억원에 달하는 운영비용의 절감을 이유로 1980년 12월 31일부로 해체를 결정했다.  
 
그러나, 1980년 대한축구협회의 프로 축구리그 창설 움직임과 과거 금융단의 축구팀 창설을 주도했던 권력층이 5공화국 성립과 함께 사라짐에 따라, 농협보다 약간 앞서 해체했던 [[산업은행 축구단]]을 선례로 삼아, 1980년 12월 농협 축구단도 연간 2억원에 달하는 운영비용의 절감을 이유로 1980년 12월 31일부로 해체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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