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곡초등학교 시절에 축구를 시작하였고 경신중학교 축구부로 진학하였다. 이후 [[경신고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고등학교 시절 워낙 몸집이 작았던터라 감독이 좋아할리 없었고 축구부를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경신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발목 골수염에 걸려 아예 선수생활을 접을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고 골수염으로 쉬던 동안에 키가 많이 자라 우여곡절 끝에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차례 위기를 겪은 후 연습에 매진하여 3학년 시절부터는 링커로 활약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경기에 많이 나가지 못했던 구상범 선수였지만, 당시 창단팀으로 고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공개 테스트를 벌인 [[인천대학교]]로 진학이 결정되면서 운명이 달라지게 된다. 당시 인천대 감독이었던 故[[임창수]], 故[[차경복]] 감독을 차례로 만나면서 축구선수로서의 기량이 급성장하게 되어 대학축구무대에서 이름을 떨치는 선수가 되었다.
== 프로 생활 ==
== 프로 생활 ==
+
1986년 인천대학교 졸업 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하였다. 윙백으로 예리한 킥과 함께 득점력까지 갖춘 구상범 선수는 데뷔시즌부터 핵심선수로 발돋움하였고 2년차인 1987년에는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