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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
== K리그 ==
1997년 [[포항 스틸러스]]에 5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당시 전주대에서 그다지 높은 활약도를 보여주지 못했던 김이섭 선수를 프로팀들은 외면했고, 포항에 가까스로 5순위로 입단하였으나, 당시 포항의 주전 GK 였던 [[이명열]] 선수의 군입대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FA컵]] 포함 32경기 출장 31실점이라는 0점대 방어율을 선보이며 프로 축구계를 놀라게했다. 덕분에 [[K리그 신인왕]] 후보로까지 올랐으나, 신인왕의 영광은 [[신진원]] 선수에게 내주고 말았다. 당대 최고의 유망주 키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얻은 김이섭 선수였으나 1998년 31경기 47실점의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친데 이어, 99년 부상으로 컨디션 회복에 차질을 빚으면서 [[조준호]]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2선발로 활약하다 2000년 시즌 종료 후, [[김병지]] 선수의 영입을 결정한 [[포항 스틸러스]]의 권유로 군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당시 [[김병지]], [[조준호]]로 무장한 포항측 입장에서는 굳이 [[김이섭]] 선수를 보유할 이유가 없었던 것.
1997년 [[포항 스틸러스]]에 5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당시 전주대에서 그다지 높은 활약도를 보여주지 못했던 김이섭 선수를 프로팀들은 외면했고, 포항에 가까스로 5순위로 입단하였으나, 당시 포항의 주전 GK 였던 [[이명열]] 선수의 군입대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며 [[FA컵]] 포함 32경기 출장 31실점이라는 0점대 방어율을 선보이며 프로 축구계를 놀라게했다. 덕분에 [[K리그 신인왕]] 후보로까지 올랐으나, 신인왕의 영광은 [[신진원]] 선수에게 내주고 말았다. 당대 최고의 유망주 키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얻은 김이섭 선수였으나 1998년 31경기 47실점의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친데 이어, 99년 부상으로 컨디션 회복에 차질을 빚으면서 [[조준호]]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2선발로 활약하다 2000년 시즌 종료 후, 포항 스틸러스가 [[김병지]] 선수를 영입하면서 2001년 8월에 웨이버 공시된다. 당시 [[김병지]], [[조준호]]라는 국가대표급 골키퍼로 무장한 포항은 굳이 [[김이섭]] 선수를 보유할 이유가 없었던 것.
[[상무]] 제대 후, [[FA]] 자격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와 1년 계약한 김이섭 선수는 2003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1년만에 다시 FA 매물로 나왔고, 이를 [[인천 유나이티드]]가 재빨리 영입하면서 인천에 입단하게된다. 인천에서는 [[권찬수]] 선수와 나란히 1,2선발을 나누어 활약하다 2005년 1선발의 자리를 굳히게 되는데 당시 0점대 방어율을 선보이며 인천을 [[K리그]] 통합 1위의 자리에 올리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으나 K리그 결승전 對 [[울산 현대]]와의 일전에서 5실점하며 국대 발탁이 좌절된 바 있다.<ref>하필, 5실점하는 경기를 아드보카트가 직접 관전하고 있었던 것.</ref> 이후 꾸준히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지키면서 매 해 1점대 초반 ~ 0점대 방어율을 보여주고 있는 김이섭 선수는 2010년 초반 [[송유걸]]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는 듯 했으나 [[허정무]]감독의 부임 이후 제법 기용되었다. 그러나 후반기 인천의 실점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김이섭 선수는 12경기 출장 25실점. 경기당 실점율이 2.0을 초과하는 상태로 시즌을 마쳤고, 결국 2010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말았다. 대건고 코치로서 제2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듯. 그리고 2011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임중용]] 선수와 함께 정식으로 은퇴식을 가졌다. [[임중용]]은 선수 명단에 등록되어 있어서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은퇴하였지만, [[김이섭]]은 명단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양복 차림으로 은퇴한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
1년 간 각 구단의 입단테스트를 받던 김이섭은 [[서동명]]의 이적, [[이광석]]의 [[상무]] 입대로 골키퍼 자원이 [[이용발]] 1명만 남은 [[전북 현대 모터스]]와 2002년 6월 입단계약을 맺었지만, 이용발에게 밀려 벤치만 달구다가 2003년 말에 FA 매물로 나왔고, 이를 [[인천 유나이티드]]가 재빨리 영입하면서 인천에 입단하게된다. 인천에서는 [[권찬수]] 선수와 나란히 1,2선발을 나누어 활약하다 2005년 1선발의 자리를 굳히게 되는데 당시 0점대 방어율을 선보이며 인천을 [[K리그]] 통합 1위의 자리에 올리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으나 K리그 결승전 對 [[울산 현대]]와의 일전에서 5실점하며 국대 발탁이 좌절된 바 있다.<ref>하필, 5실점하는 경기를 아드보카트가 직접 관전하고 있었던 것.</ref> 이후 꾸준히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지키면서 매 해 1점대 초반 ~ 0점대 방어율을 보여주고 있는 김이섭 선수는 2010년 초반 [[송유걸]]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는 듯 했으나 [[허정무]]감독의 부임 이후 제법 기용되었다. 그러나 후반기 인천의 실점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김이섭 선수는 12경기 출장 25실점. 경기당 실점율이 2.0을 초과하는 상태로 시즌을 마쳤고, 결국 2010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말았다. 대건고 코치로서 제2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듯. 그리고 2011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임중용]] 선수와 함께 정식으로 은퇴식을 가졌다. [[임중용]]은 선수 명단에 등록되어 있어서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은퇴하였지만, [[김이섭]]은 명단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양복 차림으로 은퇴한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
== 플레이 스타일 ==
== 플레이 스타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