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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2|드래프트 실시 일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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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2|드래프트 실시 일시 :  1999년 12월 3일 (서울 타워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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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2|총 드래프트 신청자 :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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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2|총 드래프트 신청자 : 332명<br/>(고교 졸업선수 : 110명, 대학선수 : 2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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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 형식 !! 숫자
 
! 지명 형식 !!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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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징 ==
 
== 특징 ==
* 당시 드래프트는 '''고교선수선발 드래프트와 대학선수선발 드래프트'''를 따로 치루었다. 당시 고교선수 드래프트의 경우, 지역 연고지명 개념을 도입해 현재의 [[클럽 유스 우선지명]]과 비슷한 시도를 꾀한바 있다. 최대 3개의 고교를 프로구단이 후원할 수 있고, 해당 후원 고교 축구부 졸업자를 대상으로 우선지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프로팀에 부여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같은 시스템은 [[2001년 드래프트]]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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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드래프트는 '''고교선수선발 드래프트와 대학선수선발 드래프트'''를 따로 치루었다. 당시 고교선수 드래프트의 경우, 지역 연고지명 개념을 도입해 현재의 [[클럽유스 우선지명]]과 비슷한 시도를 꾀한바 있다. 최대 3개의 고교를 프로구단이 후원할 수 있고, 해당 후원 고교 축구부 졸업자를 대상으로 우선지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프로팀에 부여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같은 시스템은 [[2001년 드래프트]]까지 이어졌다.  
    
* 2002년부터 드래프트가 일시 폐지되고 자유계약으로 전환됨에 따라 앞서 연고지명을 받고 대학진학을 한 선수들은 무조건 지명 된 구단에 입단하는 것이 아니라 2001년 말까지 지명구단이 우선협상권을 지니게 되고 그 이후에는 모두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었다. <ref>따라서 이 때 수원의 지명을 받았던 [[구경현]]이나, 포항의 지명을 받았던 [[신동근]], 부천의 지명을 받았던 [[이정수]] 선수 등은 대학 졸업 후, 이 때의 지명결과와 상관없이 자유계약으로 타팀에 입단하였다.</ref>
 
* 2002년부터 드래프트가 일시 폐지되고 자유계약으로 전환됨에 따라 앞서 연고지명을 받고 대학진학을 한 선수들은 무조건 지명 된 구단에 입단하는 것이 아니라 2001년 말까지 지명구단이 우선협상권을 지니게 되고 그 이후에는 모두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었다. <ref>따라서 이 때 수원의 지명을 받았던 [[구경현]]이나, 포항의 지명을 받았던 [[신동근]], 부천의 지명을 받았던 [[이정수]] 선수 등은 대학 졸업 후, 이 때의 지명결과와 상관없이 자유계약으로 타팀에 입단하였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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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고]] || [[강산들]], [[이정수]] || [[전행수]](명지대)
 
| [[문일고]] || [[강산들]], [[이정수]] || [[전행수]](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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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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