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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서의 좌절
=== 안양에서의 좌절 ===
=== 안양에서의 좌절 ===
2001년 기준으로 [[안양 LG]]에는 박성호를 포함해 고교 졸업 선수가 12명에 달했다. 또래 간의 경쟁의 틈바귀에서 박성호 선수는 탁월한 하드웨어는 갖췄으나, 공격적 센스가 모자란 탓에, 초반에는 2001년 시즌 최연소 리그 출장 (18세 138일) 기록도 세웠으나 갈수록 임펙트가 떨어졌다. 조광래 감독은 박성호 선수를 [[K리그 컵대회]]에 서브로 내보내며 가능성을 테스트했으나, 썩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는 후문. 조광래 감독은 박성호 선수에게 '헤딩만 할 생각을 말고 기술을 연마하라'는 충고를 던졌으나 어린 박성호 선수가 쉽게 스타일을 변경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2002 시즌에는 안양 2군에서 [[센터백]] 전환 훈련을 받게되었고,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 어느 쪽 하나 보완하지 못한채 2002, 2003 2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안양과의 계약기간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박성호 선수는 군입대를 결심하게 되는데, 다행히 [[경찰청 축구단]]에 합격해 2년간 군복무를 마친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때 안양은 없어져있었고, 자신은 무적 선수가 되어있었지만..
2001년 기준으로 [[안양 LG]]에는 박성호를 포함해 고교 졸업 선수가 12명에 달했다. 또래 간의 경쟁의 틈바귀에서 박성호 선수는 탁월한 하드웨어는 갖췄으나, 공격적 센스가 모자란 탓에, 초반에는 2001년 시즌 최연소 리그 출장 (18세 138일) 기록도 세웠으나 갈수록 임펙트가 떨어졌다. 조광래 감독은 박성호 선수를 [[K리그 컵대회]]에 서브로 내보내며 가능성을 테스트했으나, 썩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는 후문. 조광래 감독은 박성호 선수에게 '헤딩만 할 생각을 말고 기술을 연마하라'는 충고를 던졌으나 어린 박성호 선수가 쉽게 스타일을 변경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2002 시즌에는 안양 2군에서 [[센터백]] 전환 훈련을 받게되었고,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 어느 쪽 하나 보완하지 못한채 2002, 2003 2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안양과의 계약기간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박성호 선수는 군입대를 결심하게 되는데, 다행히 [[경찰청 축구단]]에 합격해 2년간 군복무를 마친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때 안양은 없어져있었고, gs가 자신과의 계약을 해지하여 무적 선수가 되어있었지만..
=== 부산 입단, 그리고 박니 ===
=== 부산 입단, 그리고 박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