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드래프트]]에서 [[SK UTD]]에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SK는 제주도로 연고이전을 감행한뒤, 제주도민의 외면을 받고있는 실정이었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제주 출신인 황호령을 1순위로 지명했다는 후문.<ref>당시 SK는 2007년 드래프트에서 13명이나 지명해 K리그 구단 중 가장 많은 지명권을 행사하였던바 있다. 그 중 6명이 제주도 출신. 그러나 13명 중 [[구자철]] 한명 건지고 나머지는 모두 제대로 성장하는데 실패했다..</ref> [[정해성]] 당시 SK 감독은 황호령을 주목하며 장기간에 걸쳐 육성할 것이란 뜻을 내비쳤으나, 2007년 11월 정해성 씨가 SK 감독직을 사임함에 따라 황선수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말았다. 후임 [[알툴 베르나지스]] 감독은 황호령을 SK 2군에서 도통 기용하지 않았고, 결국 2009시즌 종료 후 황호령 선수는 [[내셔널리그]]의 [[천안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하였다. | [[2007년 드래프트]]에서 [[SK UTD]]에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SK는 제주도로 연고이전을 감행한뒤, 제주도민의 외면을 받고있는 실정이었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제주 출신인 황호령을 1순위로 지명했다는 후문.<ref>당시 SK는 2007년 드래프트에서 13명이나 지명해 K리그 구단 중 가장 많은 지명권을 행사하였던바 있다. 그 중 6명이 제주도 출신. 그러나 13명 중 [[구자철]] 한명 건지고 나머지는 모두 제대로 성장하는데 실패했다..</ref> [[정해성]] 당시 SK 감독은 황호령을 주목하며 장기간에 걸쳐 육성할 것이란 뜻을 내비쳤으나, 2007년 11월 정해성 씨가 SK 감독직을 사임함에 따라 황선수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말았다. 후임 [[알툴 베르나지스]] 감독은 황호령을 SK 2군에서 도통 기용하지 않았고, 결국 2009시즌 종료 후 황호령 선수는 [[내셔널리그]]의 [[천안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