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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이트 추가됨 ,  2014년 1월 13일 (월)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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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10월20일 부산과 전북과의 경기에서 부산의 김학철 선수는 프로 데뷔골이자 마지막 골을 넣는다. 이골은 결승골이 되었고 부산이 2-1로 승리한다. 김학철의 골은 프로통산 3500호 골이었다. 8년뒤 김학철은 인천소속으로 다시 이 경기장에서 뛰게된다.
 
* 1996년 10월20일 부산과 전북과의 경기에서 부산의 김학철 선수는 프로 데뷔골이자 마지막 골을 넣는다. 이골은 결승골이 되었고 부산이 2-1로 승리한다. 김학철의 골은 프로통산 3500호 골이었다. 8년뒤 김학철은 인천소속으로 다시 이 경기장에서 뛰게된다.
 
* 철거할때까지 조명탑과 의자가 없었다. 낮 경기만 가능한데, 2004년 홈 경기 당시에 인천구단은 깔개와 햇빛을 가리기 위한 종이모자를 지급했다. 하지만 여름에 선수들 체력문제가 염려되면서 여름경기는 문학 보조에서 야간경기로 치룬다.
 
* 철거할때까지 조명탑과 의자가 없었다. 낮 경기만 가능한데, 2004년 홈 경기 당시에 인천구단은 깔개와 햇빛을 가리기 위한 종이모자를 지급했다. 하지만 여름에 선수들 체력문제가 염려되면서 여름경기는 문학 보조에서 야간경기로 치룬다.
* 경기장이 특이하게도 남북배열이 아닌 동서배열이다. 낮 경기만 가능해서 동쪽에 있는 선수와 관중은 햇빛을 마주본채로 경기에 임하거나 관전해야 했다. 전광판은 서쪽에 있었기에 그 밑에 그늘이 만들어졌고 당연히 이 자리는 인천 서포터즈 차지였다.(북패 서포터즈는 2007년 한국철도와의 FA컵 경기 당시에 숭의로써는 일반석이었던 N석에서 응원을 한다. 이름값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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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이 특이하게도 남북배치가 아닌 동서배치에 가깝다. 낮 경기만 가능해서 동쪽에 있는 선수와 관중은 햇빛을 마주본채로 경기에 임하거나 관전해야 했다. 전광판은 서쪽에 있었기에 그 밑에 그늘이 만들어졌고 당연히 이 자리는 인천 서포터즈 차지였다.(북패 서포터즈는 2007년 한국철도와의 FA컵 경기 당시에 숭의로써는 일반석이었던 N석에서 응원을 한다. 이름값을 한다.)
 
[[File:숭의종합2.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동서로 배치된 숭의 종합]]  
 
[[File:숭의종합2.jpg|200픽셀|섬네일|오른쪽|동서로 배치된 숭의 종합]]  
 
* 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 이후 철거가 아닌 존치가 검토되기도 했었다. 대회를 개최하려면 2개의 종합경기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는데,
 
* 2014년 아시안게임 유치 이후 철거가 아닌 존치가 검토되기도 했었다. 대회를 개최하려면 2개의 종합경기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철거가 결정되었다.
 
결국 철거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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