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현석의 고향은 강원도 삼척이다. 삼척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공을 차기 시작했고, 삼척초등학교를 거쳐 강릉중학교로 진학할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강릉중 감독이었던 이태복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김현석은 앞으로 크게 성장할 선수" 라고 했다. 중학교 전국 대회에서 당시 16세였던 김현석을 앞세운 강릉중이 중학교대회에서 선전했었고, 김현석은 그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강릉농고]]로 진학한 김현석은 고등학교에서도 크게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경기를 지켜본 [[연세대]] 축구부 스카우터들이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를 연세대로 데려갔다. 연세대에 입학 후, 김현석은 [[연고전]]에서 그는 2골을 터뜨리면서 연세대의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했고, 1987년에 있었던 전국 축구선수권에서도 연세대를 결승전까지 끌고 갔다. 1989년에는 주장완장을 차고 연세대를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정상에 올려놓는 1등공신이었다. | + | 김현석의 고향은 강원도 삼척이다. 삼척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공을 차기 시작했고, 삼척초등학교를 거쳐 강릉중학교로 진학할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강릉중 감독이었던 이태복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김현석은 앞으로 크게 성장할 선수" 라고 했다. 중학교 전국 대회에서 당시 16세였던 김현석을 앞세운 강릉중이 중학교대회에서 선전했었고, 김현석은 그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강릉농고]]로 진학한 김현석은 고등학교에서도 크게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경기를 지켜본 [[연세대]] 축구부 스카우터들이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를 연세대로 데려갔다. 연세대에 입학 후, 김현석은 [[연고전]]에서 그는 2골을 터뜨리면서 연세대의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했고, 1987년에 있었던 전국 축구선수권에서도 연세대를 결승전까지 끌고 갔다. 1989년에는 주장완장을 차고 연세대를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정상에 올려놓는 1등공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