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안양의 [[금성방직]]에서 창단된 금성방직 축구단이 67년부터 쌍용양회 축구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약칭은 '''쌍용'''. 금성방직을 대한농산에 넘기기로 발표한 것은 67년 10월이었고 실제 인수인계 된 것은 68년 3월 이었으므로 이미 1년전에 금성방직이 매물로 내 놓을 것을 결정하고 축구팀 명칭을 쌍용양회로 바꾼 듯 하다. 결국 이름은 쌍용이었으나 68년 3월까지는 금성방직구장을 그대로 활용하였으며, 이후 홈구장 없이 68년까지 활동하다가 팀은 해체되었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1969년 3월 [[외환은행 축구단]]의 창단멤버로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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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안양의 [[금성방직]]에서 창단된 금성방직 축구단이 67년 초부터 쌍용양회 축구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약칭은 '''쌍용'''. 금성방직을 대한농산에 넘기기로 발표한 것은 67년 10월이었고 실제 인수인계 된 것은 68년 3월 이었으므로 이미 1년전에 금성방직이 매물로 내 놓는 것을 결정하고 축구팀 명칭을 쌍용양회로 바꾼 듯 하다. 결국 이름은 쌍용이었으나 68년 3월까지는 금성방직구장을 그대로 활용하였으며, 이후 홈구장 없이 68년까지 활동하다가 팀은 해체되었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1969년 3월 [[외환은행 축구단]]의 창단멤버로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