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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 생활 == | | == 프로 생활 == |
| 2003년부터 대구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다. 대구 FC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박종진 선수는, 본래 대학시절까지는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나, 대구의 박종환 감독은 박종진 선수의 활동량을 높이 사, 김덕중 선수와 함께 좌우측 풀백 선발 라인을 맡겼다. 그 결과 데뷔 시즌에 39경기를 뛰며 총 7년동안 대구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2012년 현재까지 대구 FC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구 FC 창단 멤버로 활약중에 있다. | | 2003년부터 대구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다. 대구 FC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박종진 선수는, 본래 대학시절까지는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나, 대구의 박종환 감독은 박종진 선수의 활동량을 높이 사, 김덕중 선수와 함께 좌우측 풀백 선발 라인을 맡겼다. 그 결과 데뷔 시즌에 39경기를 뛰며 총 7년동안 대구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2012년 현재까지 대구 FC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구 FC 창단 멤버로 활약중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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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시즌을 마치고 2년 동안의 병역 의무를 위하여 상무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박종진은 이강조 감독의 눈에 들며 2008 시즌 고창현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28경기를 소화했고, 2009 시즌에는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시작 전 가진 연습 경기에서 부상[2]을 당하며 결국 그라운드를 떠났어야 했다. 주장 완장도 강민혁 선수에게 양보했다. | | 2007 시즌을 마치고 2년 동안의 병역 의무를 위하여 상무에 입대하였다. 입대 후 박종진은 이강조 감독의 눈에 들며 2008 시즌 고창현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28경기를 소화했고, 2009 시즌에는 주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시작 전 가진 연습 경기에서 부상[2]을 당하며 결국 그라운드를 떠났어야 했다. 주장 완장도 강민혁 선수에게 양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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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시즌에는 상무에서 다수의 경기에 출전하였지만 2009 시즌에는 부상으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였다. 돌아온 즉시 2009 시즌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였다. 2010년 7월 25일 경남 FC를 상대로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하였다. 2010년 대구가 최하위를 기록하자 군입대 전 5년 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최하위를 한 적이 없고, 그것이 자신의 자부심이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박종진 선수는 2009년 복귀 후 한 경기를 뛰고 리그 꼴찌를 경험했고, 2010년 한 시즌을 소화하고 다시 리그 꼴찌를 경험했다. | | 2008 시즌에는 상무에서 다수의 경기에 출전하였지만 2009 시즌에는 부상으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였다. 돌아온 즉시 2009 시즌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였다. 2010년 7월 25일 경남 FC를 상대로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하였다. 2010년 대구가 최하위를 기록하자 군입대 전 5년 동안 대구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최하위를 한 적이 없고, 그것이 자신의 자부심이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박종진 선수는 2009년 복귀 후 한 경기를 뛰고 리그 꼴찌를 경험했고, 2010년 한 시즌을 소화하고 다시 리그 꼴찌를 경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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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여름 대구FC의 리즈 시절 다시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7월 7일 광주전에서 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느낀 것. 이후 두 달간 재활에 매진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상위 스플릿에 도전하는 중요한 시기에 부상을 당해 팀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 | 2012년 여름 대구FC의 리즈 시절 다시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7월 7일 광주전에서 경기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느낀 것. 이후 두 달간 재활에 매진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상위 스플릿에 도전하는 중요한 시기에 부상을 당해 팀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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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당성증 감독 아래에서도 꾸준히 경기를 뛰었으나, 당성증이 이끌던 대구는 부진을 거듭한 끝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9경기 만에 감독 경질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와해되었다. 이후 당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백종철 감독은 전술적인 이유로 박선수를 중용하지 않았고, 결국 박종진은 경남 FC 전만 소화한채 시즌을 마쳤다. | | 2013년 당성증 감독 아래에서도 꾸준히 경기를 뛰었으나, 당성증이 이끌던 대구는 부진을 거듭한 끝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9경기 만에 감독 경질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와해되었다. 이후 당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백종철 감독은 전술적인 이유로 박선수를 중용하지 않았고, 결국 박종진은 경남 FC 전만 소화한채 시즌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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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데뷔에서 지금까지 군입대를 제외하면 대구FC의 창단 멤버로서 데뷔해서 현재까지 대구FC에서 뛰고 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신인 시절 대구에 입단한 그는 유경렬 선수에 이은 서열 2위의 고참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함께 선수 생활을 해온 김현수는 대구의 코치로 부임해 있었으며[6], 가장 막내인 92년생 김흥일 선수와는 무려 열두 살의 차이가 난다.데뷔부터 주전으로 활약하고, 대구FC의 첫 강등 이전까지 오직 대구FC에서만 뛴 선수로 그야말로 대구FC의 전설이라 할 수 있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지도자 강습회에 참여하며 다가올 시즌을 코치로 보낼 준비 중이다. | | 프로 데뷔에서 지금까지 군입대를 제외하면 대구FC의 창단 멤버로서 데뷔해서 현재까지 대구FC에서 뛰고 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신인 시절 대구에 입단한 그는 유경렬 선수에 이은 서열 2위의 고참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함께 선수 생활을 해온 김현수는 대구의 코치로 부임해 있었으며[6], 가장 막내인 92년생 김흥일 선수와는 무려 열두 살의 차이가 난다.데뷔부터 주전으로 활약하고, 대구FC의 첫 강등 이전까지 오직 대구FC에서만 뛴 선수로 그야말로 대구FC의 전설이라 할 수 있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지도자 강습회에 참여하며 다가올 시즌을 코치로 보낼 준비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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