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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안태은.jpg|섬네일|200픽셀|청소년대표 시절 안태은]]
'''안태은'''(1985년 9월 17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6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한 수비수이다.
== 프로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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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안태은'''
* [[K-리그 등록명|등록명]] : 안태은
* 출생일 : 1985년 9월 17일
* 유스클럽 : 조선대학교 중퇴
* 신체 : 176cm / 74kg
* 포지션 : [[라이트 풀백]]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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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기록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
!소속팀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 [[FC GS]] || 2006 ||26||7|| 0||0||4||0
|-
| [[FC GS]] || 2007 ||4||3|| 0||0||0||0
|-
| [[FC GS]] || 2008 ||10||3|| 0||1||4||0
|-
| [[FC GS]] || 2009 ||19||8|| 0||1||3||0
|-
| [[포항 스틸러스]] || 2010 ||8||3|| 0||0||3||1
|-
| [[인천 유나이티드]] || 2011 ||9||7|| 0||1||0||0
|-
! 통산(K리그) || - ||76||32|| 0||3||14||1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2년 3월 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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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생활 ==
전라남도 광양 출신으로 광양서초등학교, 광양중학교, [[광양제철고등학교]], [[조선대학교]]를 나온 선수이다. 안태은이란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조선대]] 시절이었다. 조선대 시절, U-20 공개테스트를 통과해 태극 마크를 달았고, 치열한 경쟁 끝에 주전자리를 차지하여 2004년 아시아 축구선수권에서 대한민국 청소년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ref>안태은이 이 대회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지만, 가장 이름을 크게 알린 선수는 다름아닌 [[박주영]]이었다. 결승전에서 중국 수비 네명을 PA 내에서 제치고 골을 넣은 장면은 대한민국에 박주영 신드롬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ULkuvxKZcXs</ref> 이후 청소년 대표로서 각종 대회에 참가해 명성을 쌓았고, 2005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나이지리아전에서 PK를 얻어내는 등 활약하였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2006 K리그 드래프트에서 [[FC GS]]에 우선지명되기에 이르렀는데..
== FC GS에서의 선수 생활 ==
=== 입단 직후 ===
[[GS]]에 입단한 안태은은 [[이기형2|이기형]]과 함께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출장하면서 차츰 경험을 쌓아나갔다. [[이장수]]감독의 지휘 아래 [[FC GS]]는 라이벌인 [[수원 삼성]]의 홈에서 컵대회 우승을 확정지을 당시, [[안태은]]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 [[이상협]], [[천제훈]], [[김동석]], [[이청용]], [[한동원]] 등이 크게 활약해준 것이란 분석이 있을정도. 이후 2006년 후기리그 [[수원]]과의 경기에서 쓰러져 있는 [[이관우]]를 넘는다는 것이 그만, 발로 [[이관우]]의 머리를 건드리게 되자 당시 주장이었던 [[김남일]]이 달려들어 안태은을 밀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덕분에 난지도 팬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었는데 이러던 좋은 분위기는 올림픽대표 한일전으로 인해 깨져버리고 만다.
=== 올림픽대표에서의 악몽 ===
2006년 11월 14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올림픽대표 한일 평가전에서 안태은은 [[김창수]], [[강민수]], [[이요한]] 등과 함께 포백 라인을 구성해 선발 출장하였다.<ref>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대한민국 베이징올림픽대표팀의 첫번째 공식 평가전이었다.</ref> 경기는 [[박주영]]의 이른 선제골로 편하게 경기를 시작하나 싶었지만, 좀처럼 득점에 성공하지 못하며 추가골의 기회를 번번히 놓쳤었는데... 그러던 중 일본의 [[우에다]]가 올린 크로스가 [[카렌]]의 머리에 맞고 안태은에게 향하자, 안태은은 걷어낸다는 것이 그만 [[정성룡]]이 지키던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 결국 경기는 1:1로 마치고 말았다. 여기에 1주일여 뒤인 11월 21일, 도쿄돔에서 열린 한일평가전 2차전에서도 안태은 선수는 선발로 나섰으나, 일본의 측면 공격수 [[미즈노 코기]]에게 경기내내 털리다가 실점을 하였고, 여기에 [[박희철]]과 교체까지 당하면서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ref>당시 미즈노 코기가 C.호날두 급으로 보였다할 반응이니 얼마나 안태은이 털렸는지 짐작이 가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안태은이 교체아웃되고 [[김창수]] 선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자, 곧바로 미즈노는 침묵모드로 돌변 (...) 당시 일본 내 반응도 미즈노 코기가 잘했다기 보다는 한국 수비수가 너무 못했다는 반응이었을 정도였다. 어쨋거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안태은은 쩌리로, 미즈노 코기는 SPL 셀틱 무대까지 가봤으니 한 경기로 여러 사람 인생이 뒤바뀐 셈이 되었다.</ref> 이후 안태은 선수의 축구인생에는 암운이 드리우게 되는데..
=== 이후의 행보 ===
이듬해인 2007년에도 올림픽대표로 차출된 안태은은 훈련중 착지 과정에서 [[이근호]]의 발을 밟으면서 왼쪽 발목을 다치게 되었고, 이로 인해 2달 정도을 부상으로 쉬게 되었다. 게다가 5월 2일 열린 [[수원 삼성]]과의 컵대회 7라운드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실책으로 수원에게 역전골을 헌납하면서 소속팀에서도 주전 경쟁에서 멀어졌고, 올대에서도 [[최철순]], [[김창수]] 등에게 완전히 밀려나버렸다. 2008년 [[이종민]]이 [[FC GS]]로 이적하면서 확인사살..; 주전자리를 완전히 빼앗기고 2군에서 뛰게된다. 2008년 후반부 들어 1군으로 올라선 안태은은 후반기 막판 인천과의 경기에서 [[정조국]]의 골을 돕는 절묘한 어시스트를 만들어 내는 등 활약하였으나, 이번에는 그의 모난 성격이 팀을 어렵게 만들었다. 수원과 치열하게 1위 경쟁을 벌이던 [[GS]]는 골득실 차로 2위에 있는 상황에서 [[포항 스틸러스|포항]]을 만나게 되었다. 무조건 다득점을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안태은은 카드가 한장 있는 상태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휘슬이 울린 후에 공을 바깥으로 뻥 차버리면서 경고누적 퇴장, 갈길 바쁜 소속팀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2위로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게 되었고, 수원에게 패배하면서 시즌을 2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del>망했어요~ㅉㅉ</del>
2009년 [[최원권]]의 군입대와 [[이종민]]의 부상으로 다시금 기회를 잡은 안태은이었지만, 이번엔 수비에 큰 약점을 보이면서 팀을 불안에 빠뜨렸다. 특히 ACL과 같은 큰 무대에서 A급 윙어들에게 시원하게 털리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면서 불안감을 가중시켰던 것. 게다가 불운까지 겹쳤다. 천신만고끝에 올라간 ACL 8강에서 [[움 살랄]]을 만난 [[GS]]는 2-1의 불안한 리드를 유지하면서 원정에서 앞서나갔다. 그러던 중 후반 안태은이 아크 정면에서 환상적인 중거리슛을 날렸고, 이 슈팅은 움살랄의 골포스트를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왔지만 득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GS로서는 불안한 리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던 [[GS]]는 이 판정으로 인해 크게 흔들렸고, 전북에서 뛰었던 [[마그노]]에게 연속골을 헌납하면서 2-3으로 거짓말 같은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만약 저때 안태은 선수의 골이 인정되었다면 안태은 선수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겠지..;
== 최효진에 쫓겨 포항으로 ==
2010년 [[귀네슈]] 감독이 GS를 떠나자, GS는 포항에서 [[최효진]]을 영입하고 안태은을 포항으로 보내주었다. [[최효진]]은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FA로서 영입되었기 때문에 트레이드로 보긴 힘들지만, 언론 보도는 거의 트레이드 형식으로 보도가 되었었다. 안태은은 포항으로 오면서 "포항이 날 택했다. 내가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올해 K리그는 물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라는 맨트를 날리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리그 최강의 윙백 [[최효진]]의 공백을 메꾸기에는 안태은으로서는 택도 없었다. 여기에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호세 모따]]와 몸싸움을 벌였다는 이유로 퇴장당하면서 팀의 패배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 인천에서 재기 도전 ==
2011년 포항에서 방출된 안태은은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이준영]]의 군 입대로 공백이 생긴 오른쪽 윙백 자리를 메꾸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본래 왼쪽 윙백이 전업인 [[전재호]]보다도 못한 활약을 보이며 나올 때 마다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띄엄 띄엄 출장하게 되었다. [[대전 시티즌|대전]]과의 홈경기에서 [[정혁]]의 프로 사상 첫 헤딩골을 도우며 살아나나 싶었지만, 이후 영입된 [[김한섭]]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잔여 경기에서 안태은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2011시즌 종료 후 인천과도 계약해지가 되어 현재 자유계약 선수이다.
== 근황 ==
2012년 한 스포츠 신문으로부터 안선수의 근황이 전해졌는데, 인터넷 도박에 빠져서 방탕하게 생활하다가 지인에게 빌린 돈까지 인터넷 도박판에 갖다 바치면서 사기혐의로 피소되었다고.. 현재는 잘(?) 해결된듯 하다. 이후 2013년 현재 해남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듯 하다.
== 플레이 스타일 ==
수비보다 공격에 훨씬 재능을 보이는 오른쪽 윙백이긴 하나, 워낙 수비력이 쳐지는 탓에 쓰기 쉽지 않다. [[GS]]시절 [[귀네슈]]감독이 그렇게 경험치를 몰아줬음에도 불구하고 기량이 제자리라는 점은 좀 아쉬울 따름. 여기에 팀을 자꾸 옮기면서 장기였던 공격력 마저 크게 다운되어 버리고, 경기 흐름을 다 깎아먹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 에피소드 ==
* 2006년 11월에 있었던 [[베이징올림픽]] 평가전 對 [[일본 U-23]] 전에서 선발출장해 [[미즈노 코기]]에게 탈탈 털린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 털렸던 기억이 워낙 강렬했던 탓인지 이때를 기점으로 줄곧 하향세. 결국 저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은퇴선언...
== 경력 ==
* 2006 ~ 2009 : [[FC GS]] / K리그
* 2010 : [[포항 스틸러스]] / K리그
* 2011 : [[인천 유나이티드]] / K리그
== 같이 보기 ==
== 외부 링크 ==
* [http://www.kleague.com/record/record_player.aspx?team_id=K18&player_id=2006068 안태은 K리그 경기 기록]
== 참고 ==
<references/>
[[분류:1985년생]][[분류:광양제철고의 선수]][[분류:조선대학교의 선수]][[분류:2006년 드래프트 지명자]][[분류:FC GS의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의 선수]][[분류: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