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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조용태.jpg|200픽셀|섬네일|수원 시절 조용태]]
'''조용태'''(1986년 3월 31일 ~ 현재)는 [[대한민국]] 국적 [[공격형 미드필더]]로, 2008년부터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 프로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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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조용태'''

* [[K-리그 등록명|등록명]] : 조용태

* 국적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 출생일 : 1986년 3월 31일

* 출생지 : {{국기그림|대한민국}} [[인천광역시]]

* 신체 조건 : 180cm / 69kg

* 유소년 클럽
** 2002 ~ 2004 [[순천중앙고등학교]] (졸업)
** 2005 ~ 2007 [[연세대학교]] (중퇴)

* 국가대표 경력 : 2007년 청소년대표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윙]]

* 현 소속팀 : 무소속

* [[등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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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 기록
:{| border=1 cellpadding=4 cellspacing=2 style="background:#FFFFFF; text-align:center; font-size: 95%; border: 1px #aaaaaa solid; border-collapse: collapse; clear:center"
|- style="background:#C0C0C0"
!소속팀 !!리그 !! 연도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 rowspan=2|[[수원 삼성 블루윙즈]] ||rowspan=6|K리그|| 2008 ||17 ||17|| 2||3 ||0 ||0
|-
| 2009 ||9 ||9|| 1||0 ||0 ||0
|-
| [[광주 상무]] || 2010 ||15 ||11|| 3||1 ||0 ||0
|-
| [[상주 상무]] || 2011 ||12 ||12|| 1||0 ||0 ||0
|-
| rowspan=3|[[수원 삼성 블루윙즈]] || 2011 ||2||2|| 0||0 ||0 ||0
|-
| 2012 ||12||12|| 1||1 ||0 ||0
|-
| rowspan=2|클래식|| 2013 ||14||12|| 1||1 ||0 ||0
|-
| [[경남 FC]] || 2014 ||0||0|| 0||0 ||0 ||0
|-
! 통산 ([[K리그]]) ||클래식|| - ||81||75|| 9||6||0 ||0
|}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3월 1일 기준.
:{{연맹선수기록|ID=20080069}}
{{col-end}}


==유소년 시절==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으며, 순천중앙초등학교 시절이던 1998년, 제 11회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았던바 있다. <REF> 당시에 대상은 조용태였고, 장려상은 [[성남 일화]], [[수원 삼성]]에서 활약 중인 [[조동건]]이 차지하였던바 있다. </ref> 이후 매산중학교를 거쳐 전남의 축구 명문 [[광양제철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여기서 조용태는 험멜코리아 제9회 [[무학기 전국축구대회]]의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전남 구단이 입단 제의를 안하는 바람에 자존심이 상한 조용태는 [[연세대학교]]로 그냥 가버린다.


== 수원 시절 ==
연세대에서 3학년을 보내던 조용태는 2007년 겨울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2라운드 6순위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수원에는 [[이관우]], [[백지훈]] 등 좋은 미드필더 자원들이 많았기에 조용태 선수는 주로 후반 조커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조커로 투입될 때마다 족족 골을 집어넣으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조용태가 교체되어 넣은 골은 2008 [[K리그 컵대회]] [[FC GS]]와의 경기, 그리고 K리그 정규리그 [[전북 현대]]와 원정 경기였는데, 특히 전북전 골은 후반 48분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기 직전에 넣은 것이어서 그 의미가 매우 컸다. 이러한 쏠쏠한 활약을 바탕으로 조용태는 소속팀의 2008 [[K리그]] 우승에 일조했지만, 2009년 부상 때문에 별로 좋은 활약을 못보여주고 2010년 [[광주 상무]]에 입대했다.


== 상무 시절 ==
상무 시절 조용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광주 상무에는 [[최성국]]이 붙박이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 여기에 상무의 중원도 빵빵했던 터라 조용태는 간간히 교체로 경기를 나서며 12경기를 소화하는데 그쳤다. 이후 2011년 최성국이 제대해서 조용태는 주전의 기회를 얻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김정우]]가 공격수 변신을 선언하는 바람에 조용태는 또 자리를 못얻었다. 다행히도 김정우가 국대 차출의 후유증으로 후반기 부진하면서<ref>여기다 공전불후의 K리그 승부조작 후폭풍으로 상주 상무의 분위기가 초상집 상황인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ref> 조선수도 조금이나마 선발 기회를 얻으며 활동하였다. 이후 2011년 9월 21일 전역신고를 하며 원 소속팀 수원으로 복귀하였다.


== 다시 수원 ==
[[윤성효]] 감독 체제로 바뀐 수원에서도 조용태에게 부여된 롤은 비슷했다. 바로 조커! 수원으로 복귀한 이후 꾸준히 조커로 출장을 해 나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11년 10월 8일 [[전북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31분 교체 투입되었지만 역습 상황에서 슈팅을 실패하였고, 곧바로 이어진 전북의 역습으로 동점골을 실점하기에 이르자 [[윤성효]]감독은 조용태를 크게 질책한 뒤 후반 44분 조용태를 도로 빼고 [[하태균]]을 투입하였다. 이 경기 이후로 조선수는 출장기록을 이어가지 못한채 11시즌을 마무리짓고 말았다. 이후 2012시즌 계속해서 대기 명단에 오르면서 조커로써의 임무를 부여받은 조용태는 2012년 4월 14일 [[대구 FC]]와의 홈경기에서 0-0으로 팽팽히 맞선 후반 44분 과감한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었고, 이를 [[스테보]] 침착하게 마무리 지으며, 팀의 1-0 승리에 공헌하였다. <DEL> 인생사 새옹지마 </DEL> 이후 [[서정원]] 감독 체제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던 조선수는 2014시즌을 앞두고 [[경남 FC]]로 1년 임대 이적하였으나 제대로 된 활약은 하지 못 하고 방출되었다.


== 플레이 스타일 ==


== 에피소드 ==
* 2008년 당시 후반 들어서 결승골을 자주 넣자 수원의 서포터는 후반 40분~ 48분 사이를 '용태 타임'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데뷔 시즌의 좋은 활약으로 2008 K리그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지만, 현실 신인왕은 당시에 컵대회 포함해서 5골 넣은 [[FC GS]]의 [[이승렬]].

* 2011년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을 준비하던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은 상주 상무의 [[김정우]], [[최효진]]을 국가대표팀에 불렀는데, 이후 대표팀과 대구 FC간 평가전을 위해 [[김치우]]와 더불어서 조용태까지 뽑아갔다.<ref>조용태의 첫 번째 국가대표 발탁이었지만 대구 FC와의 경기는 연습경기이므로 비공식으로 기록되었다.</ref>당시 [[이수철]] 상주 감독은 4명이나 국가대표로 차출된 것을 두고, "이래 가지고 어떻게 리그하냐" “대표팀도 사정이 있겠지만 우리 사정도 급하다.”라고 조광래를 열심히 디스했지만, 돌아온건 김정우 부상뿐이었다.


== 같이 보기 ==


== 외부 링크 ==


== 참고 ==
<references/>




[[분류:1986년생]][[분류:광양제철고의 선수]][[분류:연세대학교의 선수]][[분류:2008년 드래프트 지명자]][[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선수]][[분류: 광주 상무의 선수]][[분류:상주 상무의 선수]][[분류:경남 FC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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