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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김근철.jpg|160픽셀|섬네일|청대 시절의 김근철]]
 
[[File:김근철.jpg|160픽셀|섬네일|청대 시절의 김근철]]
'''김근철'''(1983년 6월 24일~)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K리그]]에서 활동한 미드필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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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철'''(1983년 6월 24일 ~ 현재)는 [[대한민국]] 국적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현재 [[타이 프리미어리그]] 클럽 [[싱타루아 FC]]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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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근철'''  
 
* 이름 : '''김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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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등록명|등록명]] : 김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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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등록명]] : 김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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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 출생일 : 1983년 6월 24일  
 
* 출생일 : 1983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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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 : 177cm / 7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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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국기그림|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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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스클럽 : [[풍생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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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 조건 : 177cm / 73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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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경력 : 2003년 [[U-20]] 청소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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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 클럽 : 1999 ~ 2001 [[풍생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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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스토퍼]], [[앵커맨]],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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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경력 : 2003년 [[대한민국 U-20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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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소속팀 : 선양 센베이 (중국 2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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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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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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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소속팀 : [[싱타루아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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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번호]]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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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그 기록 (실업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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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리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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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산 ([[K리그]]) || - ||130 ||70|| 7||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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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3년 3월 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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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4년 8월 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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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리그 진출 ==
 
== J리그 진출 ==
2001년 5월, [[J리그]] [[주빌로 이와타]]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당시 한국 고교생이 J리그로 직행한 것은 전례가 없던일이었기에 계약금도 같은 해 [[K리그]] 최대 계약금을 받았던 [[윤화평]]의 2억 5천만원을 가뿐히 넘길꺼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기대를 모으며 주빌로에 입단한 김근철 선수는 2002 시즌 개막전부터 주빌로 1군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으나, 주빌로는 당시 [[마에다 료이치료]]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데 혈안이 되있었기에 김근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결국 데뷔 시즌 김근철은 1경기 교체출장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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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J리그]] [[주빌로 이와타]]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당시 한국 고교생이 J리그로 직행한 것은 전례가 없던일이었기에 계약금도 같은 해 [[K리그]] 최대 계약금을 받았던 [[윤화평]]의 2억 5천만원을 가뿐히 넘길꺼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기대를 모으며 주빌로에 입단한 김근철 선수는 2002 시즌 개막전부터 주빌로 1군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으나, 주빌로는 당시 [[마에다 료이치료]]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데 혈안이 되있었기에 김근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결국 김근철은 1경기 교체 출장을 기록하여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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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운 데뷔 시즌 이듬해인, 2003 시즌부터는 당시 [[J2]]리그였던 [[쇼난 벨마레]]로 1년 기한부 임대 되어, 그 팀에서 핵심 주전으로 자리 잡으며 전담 프리킥커이자 팀 내 플레이메이커를 맡아 넓은 시야와 패서로서의 자질을 가감없이 뽐내며 대활약하였다. 2003 시즌 종료후 김근철 선수 본인은 주빌로로의 복귀를 희망했으나, 오히려 주빌로는 쇼난 벨마레로의 완전이적을 확정지으면서 김근철 선수를 외면했다. 김근철 선수는 쇼난 벨마레와의 계약 협상에서 '2004시즌 벨마레가 J리그로 승격이 불발된다면 팀을 떠나겠다' 는 조건하에 1년 계약에 서명했고, 2004시즌 종료후, 승격에 실패한 쇼난 벨마레를 김근철 선수는 미련없이 떠나 K리그로의 복귀를 모색했다. 2년동안 벨마레에서 김근철 선수가 남긴 기록은 78경기 출장 4골 9도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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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시즌 당시 [[J리그 세컨드 디비전]]에 등록된 [[쇼난 벨마레]]로 1년 임대를 떠났다. 넓은 시야와 감각적인 패스로 플레이메이커 자질을 가감없이 뽐내며 대활약,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하였다. 시즌 종료후 본인은 주빌로 복귀를 희망했으나, 오히려 주빌로는 쇼난 벨마레로의 완전이적을 확정지으면서 김근철을 외면했다. 김근철은 쇼난 벨마레와의 계약 협상에서 '2004시즌 벨마레가 J리그로 승격이 불발된다면 팀을 떠나겠다' 는 조건을 추가한 1년 계약서에 서명했고, 시즌 종료 후 벨마레가 승격에 실패하자 미련없이 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국내 복귀를 모색했다. 벨마레에서 그가 남긴 기록은 78경기 출장 4골 9도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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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입단 과정 ===
 
=== 대구 입단 과정 ===
벨마레를 나올 당시, 김근철 선수는 [[성남 일화 천마]] 행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고 실제로 성남에서 입단테스트를 치뤘다. 그러나 예상외로 김근철 선수는 성남으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이에 발맞춰 성남 외 다른 K리그 축구팀들도 김근철 영입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유인즉슨 [[J2]] 리그의 프레싱에서는 창조적인 패스를 발휘할 공간이 많았지만, [[K리그]]에서는 공간 자체가 틀어막히는 경우가 많아, 찔러줄 공간이 없을때 김근철 선수는 백패스로 일관하는 실망스런 플레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여기에 체력적으로도 후반 20분이 지나면서부터 급격히 움직임이 둔해지고 순간적인 돌파나 스피드면에서 평균 이하인 점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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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마레를 나올 당시 김근철 선수는 고향 클럽인 [[성남 일화 천마]] 행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고 실제로 성남에서 입단테스트를 치렀다. 그러나 예상외로 김근철 선수는 성남으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고, 이에 발맞춰 성남 외 다른 K리그 축구팀들도 김근철 영입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이유인즉슨 [[J2]] 리그의 프레싱에서는 창조적인 패스를 발휘할 공간이 많았지만, [[K리그]]에서는 공간 자체가 틀어막히는 경우가 많아 찔러줄 공간이 없을 때 김근철 선수는 백패스로 일관하는 실망스런 플레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여기에 후반 20분이 지나면서부터 급격히 움직임이 둔해지고 순간 속도나 주력 신체 능력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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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이유로 벨마레에서 활약하던 2003년에도 한국 청소년대표에 잠깐 차출되었으나, 곧바로 탈락한 경험이 있었다. 여기에 몸값도 지나치게 높았다. 이렇게 외면당하던 김근철 선수를 유일하게 [[대구 FC]][[박종환]] 감독만이 영입을 타진했고, 결국 [[대구 FC]]가 계약기간 1년으로 김근철 선수를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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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마레에서 활약하던 2003년에도 한국 청소년대표에 잠깐 차출되었으나, 같은 이유로 고배를 마신 적이 있는 김근철이었다. 그리고 몸값도 지나치게 높아 [[K리그]] 클럽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런 그를 영입할 의사를 비친 곳은 [[박종환]][[대구 FC]]였고,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김근철을 영입하며 중원을 보강하는 데 성공했다. 계약기간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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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했고 스스로 공간을 뚫어내기엔 몸싸움이나 스피드가 부족했던, 현대 축구의 흐름과 상반되는 능력의 불균형이 김근철 선수의 최대의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김근철 선수에게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포지션 전환은 한두달의 훈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김근철 선수의 경우는 웨이트레이닝도 겸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와같은 스타일 변화를 위해서 1년 밖에 안되는 대구와의 계약기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재계약하기엔, 대구에서의 미미한 활약도에 비해 몸값이 너무 높았던 선수였에 결국 대구는 2005시즌 종료와 함께 김근철 선수를 방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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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했고 스스로 공간을 뚫어내기엔 몸싸움이나 스피드가 부족했던, 현대 축구의 흐름과 상반되는 능력의 불균형이 김근철 선수의 최대의 약점이었다는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김근철 선수에게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포지션 전환은 한두달의 훈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김근철 선수의 경우는 전술 훈련에 강도 높은 체력훈련까지 병행해야 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새로운 역할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구가 보기에 김근철은 역할 변경도 지지부진하고, 만족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반면 몸값이 너무 높았던 선수였다. 결국 대구는 김근철을 방출하기로 결정하였다.
       
=== 경남 시절 ===
 
=== 경남 시절 ===
대구를 떠난 김근철 선수는, 2006년 K리그 신생팀이었던 [[경남 FC]]에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 [[박항서]] 당시 경남 감독 역시 김근철 선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나, 박종환 감독과는 달리 스피드보다는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드리블과 개인기 훈련이 김근철 성향에 맞았는지, 박항서의 조련 아래 김근철 선수의 기량도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기량 향상은 그대로 출장기록 증가와 개인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2007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경남의 핵심 중앙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특히 [[김효일]] 선수와의 중원 장악 능력은 K리그에서 최고급으로 평가받았으며 중앙에서의 조직력 극대화는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경남 FC]]의 [[6강 플레이오프]]행 등을 이끄는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김근철 선수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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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떠난 김근철은 2006년 창단한 [[경남 FC]]에 입단했다. [[박항서]] 당시 경남 감독 역시 김근철 선수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나, 박종환 감독과는 달리 스피드보다는 기술을 향상할 것을 주문했다. 드리블과 개인기를 중점적으로 훈련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게 된 김근철은 무서운 속도로 기량을 끌어올렸다. 기량 향상은 그대로 출장기록 증가와 개인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고, 2007 시즌에는 대구 시절 그렇게 소화하지 못하던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완벽하게 수행해 내며 경남 중원의 핵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김효일]]과의 중원 장악 능력은 S급으로 평가받았으며 중앙에서의 조직력 극대화는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져, [[경남 FC]]의 리그 4위를 이끈 주역이었다.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도 김근철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기존에 김근철의 파트너로 활약한 김효일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리며 전방 압박에 중점을 두고, 스토퍼 [[이상홍]]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끌어올려 김근철을 보조할 볼 위닝 미드필더 역할을 맡겨 김근철이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던 것. 그에 힘입은 김근철은 2008시즌에도 [[하나은행 FA컵]] 준우승을 이끌며 팀을 이끌어가는 존재임을 증명했다. 이처럼 경남에서 3년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그에게 2009시즌은 악몽이었다. 시즌 준비 기간까지만 해도 당연히 중앙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남은 자리를 놓고 [[이용래]], [[노용훈]] 등이 경쟁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김근철 선수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져갔던 것. 특히 그의 공백을 [[이용래]], [[안상현]] 선수가 훌륭하게 메워주면서 김근철 선수의 가치는 격감하고 말았다.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근철 선수는 자유계약 대상자로 팀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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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경남에서 3년동안 꾸준한 활약을 펼쳐온 김근철 선수에게 2009시즌은 악몽과 같았다. 시작전 까지만 해도 김근철 선수는 당연히 경남 베스트 11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김근철 선수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져갔던 것. 특히 김근철 선수가 이탈한 중앙 미드필더의 빈자리를 [[이용래]], [[안상현]] 선수가 훌륭하게 메워주면서 김근철 선수의 가치는 격감하고 말았다.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린 김근철 선수는 자유계약 대상자로 팀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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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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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는 김근철 선수가 자유계약으로 풀렸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뒤 곧바로 영입을 시도, 그를 클럽하우스로 불러들였다. 부산 입단 후 [[유호준]]과 함께 부산의 중원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체력고갈로 시즌 소화에 애를 먹었다. 2011년 [[안익수]] 감독 부임 이후에는 [[유호준]], [[박희도]] 등과 함께 2군행 지시를 받아 충격을 주었다. 유호준이 몸을 끌어올리고, 박희도 역시 출장을 이어가며 군입대를 준비하는 와중에 김근철은 부상으로 통 모습을 드러내지 못 한데다 2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안익수의 계획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시즌이 종료된 2011년 11월 [[김형필]]과 트레이드되어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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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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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는 김근철 선수가 자유계약으로 풀렸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뒤 곧바로 영입을 타진, 부산에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부산 입단 후 [[유호준]] 선수와 함께 [[투 볼란테]]를 형성하며 부산 미드필더 진을 리빌딩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체력고갈로 시즌 소화에 애를 먹었으며 김근철 선수의 이탈과 함께 부산의 성적도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2011년 [[안익수]] 감독 부임 이후에는 [[유호준]], [[박희도]] 등과 함께 2군행 지시를 받아 충격을 주었다. 유호준 선수가 다시 폼을 올리고, 희도 선수는 간간히 출장하면서 2011시즌 후 군입대를 준비하는 와중에 김근철 선수는 부상으로 통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여기에 2군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듯. 이후 2011년 11월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 [[김형필]] 선수와 트레이드 되었다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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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철 ([[부산 아이파크]]) ↔ [[김형필]] ([[전남 드래곤즈]])'''
       
=== 부산 이후 ===
 
=== 부산 이후 ===
[[정해성]] 감독은 김근철 선수에게 플레이메이커 롤을 맡기며, 전남 미드필더진에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김선수의 활약은 기대이하였다. 결국 정감독은 2012시즌 도중 전남 감독직을 사임하게 되었으며, 새로 부임한 [[하석주]] 감독은 김선수를 1군 무대에서 기용하지 않았다. 결국 12시즌 종료 뒤 전남은 김근철 선수와 계약해지를 단행하였고, 이후 김선수는 팀을 물색하다 중국 2부리그 팀인 선양 센베이에 입단하였다. 이 팀에는 2012시즌 포항에서 활동한 [[조란5|조란]]도 뛰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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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남을 이끌던 [[정해성]]은 김근철에게 전진형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기며 전남 미드필더진에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그의 활약은 미비했다. 결국 정해성이 2012시즌 도중 전남 감독직을 사임하고, 뒤를 이어 부임한 [[하석주]]는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 결국 2012시즌 종료 뒤 전남은 김근철 선수와 계약해지를 단행하였고, 이후 김선수는 팀을 물색하다 중국 2부리그 팀인 선양 센베이에 입단하였다. 2014년, 태국의 싱타루아 FC로 이적하여 팀의 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2014년, 태국의 타이포트FC(싱아타루아)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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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 스타일 ==
 
== 플레이 스타일 ==
주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괜찮은 활동량, 넓은 시야와 뛰어난 감각으로 경남의 중원을 이끌었던 선수다. [[김효일]]이 경남 합류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은 이후에는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종종 스토퍼와 동일선상에서 수비를 이끌면서 안정적인 볼 배급으로 경남에 기여하였다. 요컨대 공수양면에서 활약하였던셈. 박항서 시대가 끝난 이후에는 더 기술을 중시하는(?) 조광래 감독 휘하에서 [[김태욱]]의 든든한 지원 아래 [[이용래]]와 함께 최고의 삼각 편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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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괜찮은 활동량, 넓은 시야와 뛰어난 감각으로 경남의 중원을 이끌었던 선수다. [[김효일]]이 경남 합류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은 이후에는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종종 스토퍼와 동일선상에서 수비를 이끌면서 안정적인 볼 배급으로 경남에 기여하였다. 경남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레지스타]]로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 에피소드 ==
 
== 에피소드 ==
 
*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볼을 걷어내려던 것이 당시 주심이던 [[이상용]]의 안면을 강타해 경남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 장면은 당시 '근백이헤드샷.gif'라는 이름으로 경남 팬들의 미니홈피를 장식했다. 이 해프닝이 있은 뒤로 몇몇 경남 팬들은 이상용이 주심으로 배정되어 삽질을 하면 '상용아! 근철이 불러올까?' 라며 그들만의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기도.
 
*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에서 볼을 걷어내려던 것이 당시 주심이던 [[이상용]]의 안면을 강타해 경남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 장면은 당시 '근백이헤드샷.gif'라는 이름으로 경남 팬들의 미니홈피를 장식했다. 이 해프닝이 있은 뒤로 몇몇 경남 팬들은 이상용이 주심으로 배정되어 삽질을 하면 '상용아! 근철이 불러올까?' 라며 그들만의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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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한 경남 팬이 페이스북에 그를 추억하는 글을 올리자 댓글로 지금도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프로에서 가장 오래 있던 팀이라 추억이 많다. 그런 팀이 강등되면 슬플 것 같다고 이야기하여 경남팬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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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 [[전남 드래곤즈]] / K리그
 
* 2012 : [[전남 드래곤즈]] /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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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선양 센베이]] / 중국 슈퍼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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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 현재 : [[싱타루아 FC]] / 타이 프리미어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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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83년생]][[분류:해외진출 선수]][[분류:풍생고등학교의 선수]][[분류:대구 FC의 선수]][[분류:경남 FC의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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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83년생]][[분류:해외진출 선수]][[분류:풍생고등학교의 선수]][[분류:대구 FC의 선수]][[분류:경남 FC의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선수]][[분류:해외파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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