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장덕진]] 씨가 제 6회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 축하연에서 '''아시아규모의 국제축구대회를 한국에서 해마다 개최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구상된 것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의 시작이었다. 장덕진 씨는 당시 재무부차관보라는 지위와 더불어 육영수 여사의 가까운 친인척이라는 인맥을 동원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개최를 추진하였으며, 박 대통령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전용 우승컵을 하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대회 개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1년 대회부터 1975년 대회까지는 아시아 국가에 한정된 대회였으나 1975년 방한한 당시 [[FIFA]] 회장인 [[주앙 아벨란제]]의 주선으로 브라질 주리그 대표들도 방한하여 동대회에 참가함에 따라 국제 규모(?)의 축구대회로 발전하였다. | 1970년,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장덕진]] 씨가 제 6회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 축하연에서 '''아시아규모의 국제축구대회를 한국에서 해마다 개최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구상된 것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의 시작이었다. 장덕진 씨는 당시 재무부차관보라는 지위와 더불어 육영수 여사의 가까운 친인척이라는 인맥을 동원해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개최를 추진하였으며, 박 대통령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전용 우승컵을 하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대회 개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1년 대회부터 1975년 대회까지는 아시아 국가에 한정된 대회였으나 1975년 방한한 당시 [[FIFA]] 회장인 [[주앙 아벨란제]]의 주선으로 브라질 주리그 대표들도 방한하여 동대회에 참가함에 따라 국제 규모(?)의 축구대회로 발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