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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김병지.jpg|180픽셀|섬네일|프랑스 월드컵 대표 시절의 김병지]]
[[File:김병지.jpg|180픽셀|섬네일|프랑스월드컵 대표팀 시절 김병지]]
'''김병지''' (金秉址, Kim, Byung Ji, 1970년 4월 8일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2년부터 2016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하였던 전설적인 [[골키퍼]]이다.
'''김병지''' (金秉址, Kim, Byung Ji, 1970년 4월 8일 ~ )는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이자 축구인으로, 1992년부터 2016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하였던 전설적인 [[골키퍼]]이다.
== K리그 ==
== K리그 ==
=== 현대, 울산 시절 ===
=== 현대ㆍ울산 시절 ===
용접공으로 끝날뻔했던 김병지 선수의 인생은 1989년 상무 축구단에 합격하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상무 시절인 1991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 [[국민은행 축구단]] 과의 결승전에서, 김병지 선수는 국민은행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었을 뿐 아니라, 연장전후 치루어진 승부차기에서 국민은행 키커의 PK를 막아내며 상무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동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프로팀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상무 전역과 동시에, 당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씨의 눈에 들어 월봉 80만원의 [[연습생]] 신분으로 현대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것이 1992년의 일이었다. 당시 현대 호랑이의 1선발 골리는 국가대표 [[최인영]] 씨였는데, 최선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어 국가대표 훈련에 불려다니는 통에 현대에서 출장하지 못하는 시간이 더러있었고 이러한 기회를 틈타 김병지 선수는 1군 무대에서 출장경력을 쌓으며 빠르게 프로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특히 1992년 열린 [[아디다스 컵대회]]에서 승부차기만 3개를 막아내는 등 PK 방어에서 강점을 보인 김병지 선수는 무서운 새내기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특히 [[1993년 K리그]]는 무승부가 폐지되고 90분 전후반 경기에도 승부가 나지않을 경우, 승부차기로 이어지는 희한한 제도를 채택했고 이에 김병지 선수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알까기]]를 범하며 세간의 혹독한 비판을 당했던 최인영 선수는 쓸쓸히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말았고, 이후 무주공산이 된 현대의 1선발 자리를 차지한 김병지 선수는 2000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활약하며 1996년, 울산 현대의 창단 이후 첫번째 우승을 견인하며 K리그 무대 최정상급 골리임을 입증해보였다.
용접공으로 끝날뻔했던 김병지 선수의 인생은 1989년 상무 축구단에 합격하면서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상무 시절인 1991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 [[국민은행 축구단]] 과의 결승전에서, 김병지 선수는 국민은행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었을 뿐 아니라, 연장전후 치루어진 승부차기에서 국민은행 키커의 PK를 막아내며 상무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동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프로팀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상무 전역과 동시에, 당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의 감독이었던 [[차범근]] 씨의 눈에 들어 월봉 80만원의 [[연습생]] 신분으로 현대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것이 1992년의 일이었다. 당시 현대 호랑이의 1선발 골리는 국가대표 [[최인영]] 씨였는데, 최선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어 국가대표 훈련에 불려다니는 통에 현대에서 출장하지 못하는 시간이 더러있었고 이러한 기회를 틈타 김병지 선수는 1군 무대에서 출장경력을 쌓으며 빠르게 프로 무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특히 1992년 열린 [[아디다스 컵대회]]에서 승부차기만 3개를 막아내는 등 PK 방어에서 강점을 보인 김병지 선수는 무서운 새내기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특히 [[1993년 K리그]]는 무승부가 폐지되고 90분 전후반 경기에도 승부가 나지않을 경우, 승부차기로 이어지는 희한한 제도를 채택했고 이에 김병지 선수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알까기]]를 범하며 세간의 혹독한 비판을 당했던 최인영 선수는 쓸쓸히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말았고, 이후 무주공산이 된 현대의 1선발 자리를 차지한 김병지 선수는 2000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활약하며 1996년, 울산 현대의 창단 이후 첫번째 우승을 견인하며 K리그 무대 최정상급 골리임을 입증해보였다.
== 706경기대기록을 끝으로 현역 은퇴 ==
== 706경기 대기록을 끝으로 현역 은퇴 ==
2015년 시즌 종료 직전에 [[전남 드래곤즈]]에서 모종의 논란에 휩싸인 김병지 선수와 계약을 종료한다고 선언하면서 현역 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생기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지명도가 높고 전설적인 선수라 이적이 쉬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2016년 이적 시장에서 어느 팀에도 입단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2016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카더라 통신으로 [[김동준]]의 올림픽 차출로 골키퍼 공백이 생긴 [[성남 FC]]에 입단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러한 소문이 돌던 중 김병지 선수가 현역 최종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스포티비]]에서 [[최태욱]]과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5년 시즌 종료 직전에 [[전남 드래곤즈]]에서 모종의 논란에 휩싸인 김병지 선수와 계약을 종료한다고 선언하면서 현역 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생기고 말았다. 일각에서는 지명도가 높고 전설적인 선수라 이적이 쉬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2016년 이적 시장에서 어느 팀에도 입단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후 2016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카더라 통신으로 [[김동준]]의 올림픽 차출로 골키퍼 공백이 생긴 [[성남 FC]]에 입단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이러한 소문이 돌던 중 김병지 선수가 현역 최종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스포티비]]에서 [[최태욱]]과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