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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도 !! 소속팀 !! 리그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 ! 연도 !! 소속팀 !! 리그 !! 출장 !! 교체 !! 득점 !! 도움 !! 경고 !! 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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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96 || style="text-align:left"|{{팀|수원|1996}} || rowspan=11|K리그 || 10 || 3 || 0 || 0 || 1 || 0 | + | | 1996 || style="text-align:left" rowspan=2|{{팀|수원|1996}} || rowspan=11|K리그 || 10 || 3 || 0 || 0 || 1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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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97 || rowspan=3 {{팀/수원|1}} || 12 || 4 || 0 || 0 || 3 || 0 | + | | 1997 || 12 || 4 || 0 || 0 || 3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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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98 || 2 || 1 || 0 || 0 || 0 || 0 | + | | 1998 || rowspan=2 {{팀/수원|1}} || 2 || 1 || 0 || 0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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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wspan=2|2001 || 2 || 1 || 0 || 0 || 0 || 0 | | | rowspan=2|2001 || 2 || 1 || 0 || 0 || 0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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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남에 입단한 이후로도 2002년까지 정규 주전 선수로 오르지 못하고 말았고, 이 시기에 무명이었던 [[문삼진]]보다 적은 경기 출전을 보여주며 불안한 입지를 가져고 말았다. 그러나 2003년부터 [[차경복]] 감독의 신뢰 속에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였고, 꾸준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경기인 25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이 만개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성남의 리그 3연패의 금자탑의 주인공으로 한 몫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 | 성남에 입단한 이후로도 2002년까지 정규 주전 선수로 오르지 못하고 말았고, 이 시기에 무명이었던 [[문삼진]]보다 적은 경기 출전을 보여주며 불안한 입지를 가져고 말았다. 이후 2003년에 수원에서 프로 입단 동기 선수였던 같은 포지션의 [[이기형2|이기형]] 선수까지 영입하게 되면서 더욱 주전 경쟁이 험난해 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차경복]] 감독의 신뢰 속에 정상 컨디션을 회복한 모습으로 정규 주전으로 출전해 꾸준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경기인 25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이 만개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성남의 리그 3연패의 금자탑의 주인공으로 한 몫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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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과 대전 시절 === | | === 부산과 대전 시절 === |
− | 성남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뒤로 박충균 선수는 [[이안 포터필드]]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자유계약]] 신분으로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였다. 부산에 입단한 뒤로 14경기에 출전하며, 부산의 [[2004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2005년부터 경기 출전 수가 10경기로 줄어들었고, 시즌 종료와 함께 [[대전 시티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대전에 입단한 박충균 선수는 베테랑으로 젊은 대전 선수들을 이끌며 측면 수비와 미드필더로 진두지휘하며 22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 2007년 부산의 [[엔디 에글리]] 감독의 요청에 따라 부산으로 복귀하였고, 10경기에 출전한 뒤, 시즌 종료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를 결정하였으며, 2008년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1라운드 개막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러 현역에서 물러났다. | + | 성남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뒤로 박충균 선수는 [[이안 포터필드]]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자유계약]] 신분으로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였다. 부산에 입단한 뒤로 14경기에 출전하며 부산의 [[2004 하나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2005년부터 경기 출전 수가 10경기로 줄어들었고, 시즌 종료와 함께 [[대전 시티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대전에 입단한 박충균 선수는 베테랑으로 젊은 대전 선수들을 이끌며 측면 수비와 미드필더로 진두지휘하며 22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 2007년 부산의 [[엔디 에글리]] 감독의 요청에 따라 부산으로 복귀하였고, 10경기에 출전한 뒤 시즌 종료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를 결정하였으며, 2008년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1라운드 개막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러 현역에서 물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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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레이 스타일 === | | === 플레이 스타일 === |
− | 장신 선수임에도 측면 수비를 담당하는 선수로 [[이기형2|이기형]] 선수보다 민첩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측면 수비로 최적의 요건을 갖춘 선수로 각광받기도 하였으나, 수비력에 있어서 가다듬어지지 않는 모습이 커 한동안 주전 선수로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후 30대에 접어든 2003년부터 안정적인 수비 능력과 터프한 수비를 보여주게 되면서 수준급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 + | 장신 선수임에도 측면 수비를 담당하는 선수로 [[이기형2|이기형]] 선수보다 민첩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측면 수비로 최적의 요건을 갖춘 선수로 각광받기도 하였으나, 수비력에 있어서 가다듬어지지 않는 모습과 공격력에 있어서도 날카로운 면이 경쟁 선수들 보다 부족하다는 평가가 한동안 커 한동안 주전 선수로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후 30대에 접어든 2003년부터 안정적이고 터프한 수비를 보여주게 되면서 수준급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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