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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2일 (월) 02:26
'''대학선수 집단 월북사건'''이란, 1948년 가을에 벌어진 대한민국 대학 축구선수 10명이 북한으로 월북한 사건을 말한다.
= 사건 개요 =
== 대학 선수들의 집단 월북 ==
당시 최정예 대학축구선수들이 조축구협회 평의원 겸 감사였던 [[현효섭]]에 포섭되어 집단으로 월북한 사건이다. 당시 일부 대학 선수들이 잠적하였고 [[고려대]]와 [[동국대]]는 일부 주전이 빠진채 [[제21회 전국체전]] 서울대표 예선을 치뤄야 했다.며칠이 지나지 않아 [[북한]]의 라디오 방송에서 "남조선 축구대표팀이 정부 수립을 경축하여 펼쳐진 기념 체육대회에 출전했으며 준결승에서 탈락하였다"는 보도를 내면서 이들의 월북 사실이 확인되었다.
== 월북 이유는?==
현효섭은 [[보성전문]]의 축구선수 출신이었으며, 당시 보성전문의 후신인 [[고려대학교]]의 출신 선수가 4명(이강열,이범태,신현수,이봉우)으로 [[연세대학교]]와 같이(양준석,이찬영,안봉오,문창욱)제일 많았고 [[서울대학교]] 출신 선수 2명(이한상,손덕교)과 [[동국대학교]] 출신의 선수 1명(박송림)이 각각 월복하였다.당시 이들중 4명이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대표팀 2차 예비후보, 2명이 1차 예비후보 였기에 당시 30대가 대거<ref>16명중 11명이 30대 노장이었다.</ref> 올림픽에 출전했기에 이에 대한 반발이라는 설,양준석과 이강열이 남로당원이어서 이들을 권유하였다는 설,유럽의 사회주의 국가 원정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서 갔다는 설등 다양하다. 다만 당시 [[고려대학교]] 소속이던 [[홍덕영]]씨는 당시 서울 대학선수들은 북한이 아닌 시골의 지역단위 축구대회에 가는줄 알았을것이라로 추측했다. 당시 시골에서 촌 축구대회를 열면 주변지역 청년들이 팀을 구성하는데 승부욕으로 서울로 올라와서 선수들을 사서 팀을 구성하기도 했었다고 한다.당시 서울팀 선수들이 이런 촌 축구대회에 참가하면 받는 대접이 극진하였다고....
월북한 선수들은 1명<ref>연대의 문창욱 선수로 북한대회에 출전이후 바로 연대로 돌아와 대학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ref>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한에 잔류하였고 전쟁 후 빨치산으로 내려온 일부가 서울시내에서 목격되었다 한다.
= 같이 보기 =
= 참고 =
<references/>
[[분류:흑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