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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2월 21일 (월) 02:23
잔글'''특무대'''(Counter Intelligence Corps,'''CIC''')는 1950년대, 군사 기밀을 다루던 육군본부 소속 '''특무부대'''의 약칭으로 현재의 기무사령부의 전신이다. '''특무대 축구단'''은 1950년대 최강의 축구단으로 명성도 높았으나 경기에 지면 난리를 피워 무효화 하는 등 악명도 높았다.
== 특무부대 ==
== 특무부대 축구단 ==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1951년 10월 김창룡 당시 특무부대장의 주도로 창설되었다. 특무대 축구단은 경기를 지면 (또는 질거같으면) 벤치측에서 선수단을 불러 모아서 경기를 무효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압권은 1955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벌어졌다. 당시 헌병감실과 특무대는 전국축구선수권 결승에서 1차전 0:0으로 승부가 나지 않자 재경기까지 벌이는 등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 정규시간 동안에도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연장전에 들어가게 된다. 연장전도 종료되기 3분전 헌병감실이 극적인 골을 성공시키며 앞서나가자 특무대 벤치측에서 특무대 선수들에게 퇴장 명령을 내린다. 특무대 선수들은 군소리 없이 퇴장해 순식간에 경기는 중단되었고, 주심은 이도저도 못하다 노게임을 선언하였다. -ㅁ-;
이 사건으로 [[현정주]]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사임하였으며 당시 헌병감실 vs 특무대 경기 주심이었던 [[김영근]] 씨는<ref>확실하진 않지만 [[김용식]] 옹과 함께 일제 치하당시 일본 베를린 올림픽대표로 발탁되었던 고 김영근 선생과 동일인인 것으로 보인다.</ref> 다시는 심판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처럼 각종 설화를 일으켰음에도 특무대 축구단은 황금다리 [[최정민]] 등 수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한 팀으로 1950년대 최강의 축구단으로 한국축구사에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렇게 존속하여오던 특무대 축구단은 1965년 군부대 여건상 더 이상 축구팀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같은 해 4월 [[춘계실업축구연맹전]]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선언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참고 사항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