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85년 목포항운노조 새마을 봉사단이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면서 이를 계기로 순수 아마추어 팀에서 실업팀으로 재창단하게 된다. <ref>일반적인 실업팀은 기업이나 금융권이 모기업이었지만, 목포항운노조는 노조원들의 모임인 노동조합이 모체라는게 다른팀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선수들도 입단과 동시에 노조신분을 가지게 된다. </ref>전국체전 종료후 바로 실업팀에 등록하고 선수를 보강한 뒤 1986년 3월에 공식적으로 창단식을 열었으며 이후 각종 실업축구대회에 꾸준히 출전해왔으나 1988년 10월 해체된다.<ref>주로 근로자들의 성금으로 운영해왔는데, 1988년 총선기간에 노사분규가 일어나면서 성금이 끊기며 해체 위기에 몰렸고 7월에 해체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태엽]] 코치는 1988년 11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참가를 목표로, 사비를 들여가며 계속 선수단을 운영했으나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ref> | + | 1985년 목포항운노조 새마을 봉사단이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면서 이를 계기로 순수 아마추어 팀에서 실업팀으로 재창단하게 된다. <ref>일반적인 실업팀은 기업이나 금융권이 모기업이었지만, 목포항운노조는 노조원들의 모임인 노동조합이 모체라는게 다른팀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선수들도 입단과 동시에 노조신분을 가지게 된다. </ref>전국체전 종료후 바로 실업팀에 등록하고 선수를 보강한 뒤 1986년 3월에 공식적으로 창단식을 열었으며 이후 각종 실업축구대회에 꾸준히 출전해왔으나 1988년 10월경 해체된 것으로 추측된다.<ref>주로 근로자들의 성금으로 운영해왔는데, 1988년 총선기간에 노사분규가 일어나면서 성금이 끊기며 해체 위기에 몰렸고 7월에 해체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태엽]] 코치는 1988년 11월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참가를 목표로, 사비를 들여가며 계속 선수단을 운영했으나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