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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선발과 자체 홍백전등의 선발전을 거쳐 1948년 5월 15일 런던 올림픽대표 최종 엔트리 16명이 발표되었으니 이는 다음과 같다.
 
1차 선발과 자체 홍백전등의 선발전을 거쳐 1948년 5월 15일 런던 올림픽대표 최종 엔트리 16명이 발표되었으니 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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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table style="background-color:#F2F5FD; font-size:100%; margin:0; border: 1px solid #C7D0F8; padding:7px 7px 0px 7px; -moz-border-radius:10px;" width="100%;"><tr><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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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
+
! 포지션 !! 이름 !! 당시 소속팀 !! 현 소속팀
: [[박정휘]] (출정 직전, [[이영민]]으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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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olspan="4" bgcolor="white" | '''스탭진'''
* 선수단  
+
|-
: GK : [[차순종]] (조선전업), [[홍덕영]] (고려대)
+
| '''감독''' || <del>[[박정휘]]</del> → [[이영민]] || KFA || 작고
 
+
|-
: FB : [[박규정]] (조선전업), [[박대종]] (조선전업), [[이시동]] (인천 조일양조)
+
| colspan="4" bgcolor="white" | '''선수단'''
 
+
|-
: HB : [[민병대]] (조선전업), [[이유형]] (인천 조일양조), [[최성곤]] (조선전업), [[김규환]] (조선전업)
+
| rowspan="2" |'''GK''' || [[차순종]] || [[조선전업]] || rowspan="16"|작고
 
+
|-
: FW : [[우정환]] (조선전업), [[배종호]] (인천 조일양조), [[정남식]] (조선전업), [[김용식]] (조선전업), [[정국진]] (인천 조일양조), [[안종수]] (조선전업), [[오경환]] (인천 조일양조)
+
[[홍덕영]] || [[고려대학교]]
</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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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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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3" |'''[[FB]]''' || [[박규정]] ||rowspan=2| [[조선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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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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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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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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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동]] || [[조일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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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5" |'''[[HB]]'''|| [[민병대]] || rowspan="4"| [[조선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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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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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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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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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형]] || [[조일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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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6" |'''[[FW]]''' || [[배종호]]   || rowspan=3|[[조일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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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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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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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환]]   ||rowspan=3| [[병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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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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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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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수 선발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아, 대표팀은 제대로 된 소집훈련 조차 소화하지 못한채 6월 21일 런던으로 출발했고, [[조선축구협회]] 측은 대표팀 선발에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하며 임원진이 총사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선수 선발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아, 대표팀은 제대로 된 소집훈련 조차 소화하지 못한채 6월 21일 런던으로 출발했고, [[조선축구협회]] 측은 대표팀 선발에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하며 임원진이 총사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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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결과 ==
 
== 출전 결과 ==
1948년 6월 21일 서울을 출발한 축구대표팀은 부산, 요코하마, 홍콩을 거쳐 런던에 도착하였으나 중간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특기할만한 것은 당초 감독이었던 [[박정휘]]씨를 건강상의 이유를 빌미로 [[조선체육회]] 측에서 출국 금지시키고, 임시로 당시 조선야구협회 시찰단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였던 [[이영민]] 씨를 축구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축구팀은 런던에 도착, 7월 29일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뒤 8월 2일 제 1회전인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와의 일전을 치루었으며, 이 경기에서 [[배종호]], [[정남식]], [[최성곤]], [[정국진]] (2골)의 연속골로 '''5:3'''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올림픽 축구는 1회전 승리시, 곧바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조별예선 없는 토너먼트 였기에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첫 국제대회 출전에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다.<ref>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FIFA 월드컵]], [[올림픽]] 등 [[FIFA]]가 공인하는 각종 메이져 대회 본선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경기 5골 이상을 넣은 것은 이때가 최초. 이후 장장 68년간 기록이 깨지지 않다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조별예선에서 [[피지 U-23]]을 상대로 '''8:0''' 대승이 작성되면서 경신되었다. 여기에 1경기에서 멀티골을 (2골 이상) 기록한 한국 선수 ([[정국진]])가 나온 것도 이 때가 최초. 참고로 이전 문서에서는 정국진 선수의 기록을 1경기 멀티골 기록 유일 보유자라고 기재하였으나, 이는 저자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조재진]] (조별예선 3차전 對 [[말리 U-23]] 전 2골)ㆍ[[이천수]] (8강 對 [[파라과이 U-23]] 전 2골)이 기록한 멀티골을 깜빡 잊고 작성한 것이어서 정정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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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6월 21일 서울을 출발한 축구대표팀은 부산, 요코하마, 홍콩을 거쳐 런던에 도착하였으나 중간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특기할만한 것은 당초 감독이었던 [[박정휘]]씨를 건강상의 이유를 빌미로 [[조선체육회]] 측에서 출국 금지시키고, 임시로 당시 조선야구협회 시찰단 자격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였던 [[이영민]] 씨를 축구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축구팀은 런던에 도착, 7월 29일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뒤 8월 2일 제 1회전인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와의 일전을 치루었으며, 이 경기에서 [[배종호]], [[정남식]], [[최성곤]], [[정국진]] (2골)의 연속골로 '''5:3'''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올림픽 축구는 1회전 승리시, 곧바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조별예선 없는 토너먼트 였기에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첫 국제대회 출전에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다.<ref>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FIFA 월드컵]], [[올림픽]] 등 [[FIFA]]가 공인하는 각종 메이져 대회 본선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경기 5골 이상을 넣은 것은 이때가 최초. 이후 장장 68년간 기록이 깨지지 않다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조별예선에서 [[피지 U-23]]을 상대로 '''8:0''' 대승이 작성되면서 경신되었다. 여기에 1경기에서 멀티골을 (2골 이상) 기록한 한국 선수 ([[정국진]])가 나온 것도 이 때가 최초. 참고로 이전 문서에서는 정국진 선수의 기록을 1경기 멀티골 기록 유일 보유자라고 기재하였으나, 이는 저자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조재진]] (조별예선 3차전 對 [[말리 U-23]] 전 2골)ㆍ[[이천수]] (8강 對 [[파라과이 U-23]] 전 2골)이 기록한 멀티골을 깜빡 잊고 작성한 것이어서 정정한다. 다만 정국진 선수의 기록은 [[A매치]] 기록이고, 조재진과 이천수의 기록은 U-23 매치 기록이라는 차이점이 있다.</ref>  
    
이처럼 서전을 짜릿한 승리로 장식하며 8강 진출을 확정지은 올림픽 대표팀이었으나, 멕시코 전에서 FB 였던 [[박규정]] 씨가 부상을 당했고, 다른 출전 선수들도 빗속의 혈투를 치룬 후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그러나 8강전은 한국 선수들이 쉴틈도 없이, 곧바로 멕시코전 3일 뒤인 8월 5일에 치루어졌고 상대는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이었다. 당시 스웨덴은 훗날 [[AC 밀란]]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로 군림하는 '군나르 노르달'<ref>Nils Gunnar Nordahl. AC 밀란에서만 257경기를 뛰며 210골을 기록해 현재까지도 AC 밀란 역대 개인 최다 득점자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49/50시즌에는 35골을 기록하며, 이탈리아 세리에 A 역대 1시즌 최다 득점자로 66년동안 군림하다 15/16시즌 [[곤살로 이과인]]이 36골을 기록하며 2위로 물러나기도 하였다.</ref>과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훌름까지 훗날 Gre-No-Li라 불리우며 AC 밀란의 전설로 추앙받는 세 선수가 모두 출장한 당대 최강의 팀구성을 갖추고 있었기에, 경기의 승패는 시작하자마자 갈리고 말았다. 결과는 0:12 의 한국의 대참패.<ref>이 스코어는 한국 축구 역사상 A매치 최다 실점패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첨언으로 위에 얘기한 Gre-No-Li 트리오는 한국을 상대로 7골을 쏟아넣었다..</ref> 스웨덴은 한국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해 동대회 금메달을 차지한다. 비록 8강전에서 대패하긴 했지만 첫 세계 대회 출전에 8강 업적을 달성하며 멋진 신고식을 치루었다. 물론 사람들은 1948년 8강 신화보다 1954년 스위스의 악몽을 더 기억하는 편이라서 크게 알려져있지는 않다.
 
이처럼 서전을 짜릿한 승리로 장식하며 8강 진출을 확정지은 올림픽 대표팀이었으나, 멕시코 전에서 FB 였던 [[박규정]] 씨가 부상을 당했고, 다른 출전 선수들도 빗속의 혈투를 치룬 후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그러나 8강전은 한국 선수들이 쉴틈도 없이, 곧바로 멕시코전 3일 뒤인 8월 5일에 치루어졌고 상대는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이었다. 당시 스웨덴은 훗날 [[AC 밀란]]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로 군림하는 '군나르 노르달'<ref>Nils Gunnar Nordahl. AC 밀란에서만 257경기를 뛰며 210골을 기록해 현재까지도 AC 밀란 역대 개인 최다 득점자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49/50시즌에는 35골을 기록하며, 이탈리아 세리에 A 역대 1시즌 최다 득점자로 66년동안 군림하다 15/16시즌 [[곤살로 이과인]]이 36골을 기록하며 2위로 물러나기도 하였다.</ref>과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훌름까지 훗날 Gre-No-Li라 불리우며 AC 밀란의 전설로 추앙받는 세 선수가 모두 출장한 당대 최강의 팀구성을 갖추고 있었기에, 경기의 승패는 시작하자마자 갈리고 말았다. 결과는 0:12 의 한국의 대참패.<ref>이 스코어는 한국 축구 역사상 A매치 최다 실점패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첨언으로 위에 얘기한 Gre-No-Li 트리오는 한국을 상대로 7골을 쏟아넣었다..</ref> 스웨덴은 한국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해 동대회 금메달을 차지한다. 비록 8강전에서 대패하긴 했지만 첫 세계 대회 출전에 8강 업적을 달성하며 멋진 신고식을 치루었다. 물론 사람들은 1948년 8강 신화보다 1954년 스위스의 악몽을 더 기억하는 편이라서 크게 알려져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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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요약 ==
 
== 결과 요약 ==
<table style="background-color:#F2F5FD; font-size:100%; margin:0; border: 1px solid #C7D0F8; padding:7px 7px 0px 7px; -moz-border-radius:10px;" width="100%;"><tr><td>
+
=== 1라운드 ===
* 1회전
+
----
: 멕시코 전 → 5:3 한국 승 ([[정국진]] 2골, [[최성곤]], [[정남식]], [[배종호]] (이상, 1골)
+
{{footballbox
 +
| date      = 1948년 8월 2일
 +
| time      = 18:30
 +
| team1      = [[대한민국]] {{국기그림|대한민국}}
 +
| score      = 5 – 3
 +
| report    = [http://www.fifa.com/tournaments/archive/mensolympic/london1948/matches/round=197052/match=32361/index.html Report]
 +
| team2      = {{국기그림|멕시코}} [[멕시코]]
 +
| goals1    = [[최성곤]]{{goal|13}}[[배종호]]{{goal|30}}<br />[[정국진]]{{goal|63||66}}<br />[[정남식]]{{goal|87}}
 +
| 골2        = Cárdenas{{goal|23}}Figueroa{{goal|85}}<br />Ruiz{{goal|89}}
 +
| stadium    = Dulwich
 +
| attendance = 6,500
 +
| referee    =  Leo Lemesic {{국기그림|유고슬라비아}}
 +
| penaltyscore =
 +
| penalties1  =
 +
}}
   −
* 2회전
  −
: 對 스웨덴 전 → 0:12 한국 패
     −
* 최종성적
+
=== 8강전 ===
: 8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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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r></table>
+
{{footballbox
 +
| date      = 1948년 8월 5일
 +
| time      = 18:30
 +
| team1      = [[대한민국]] {{국기그림|대한민국}}
 +
| score      = 0 – 12
 +
| report    = [http://www.fifa.com/tournaments/archive/mensolympic/london1948/matches/round=197053/match=32364/index.html Report]
 +
| team2      = {{국기그림|스웨덴}} [[스웨덴]]
 +
| goals1    =
 +
| 골2        = Liedholm{{goal|11,62}}Gunnar Nordahl{{goal|25,40,78,80}}<br/>Gunnar Gren{{goal|27}}<br/>Carlsson{{goal|61,64,82}}<br/>Rosén{{goal|72,85}}
 +
| stadium    = South Norwood
 +
| attendance = 7,100
 +
| referee    =  Giuseppe Carpani {{국기그림|이탈리아}}
 +
| penaltyscore =
 +
| penalties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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