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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 푸마]]''' 사태후에 컴퓨터 조립기업인 제우정보의 스폰을 받아 새롭게 '''전북 엑스터'''로 94 시즌에 데뷔를 앞두고 있었으나 1994년 3월15일 정일진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새 구단주 문수기 (주)보배 대표이사와 배성수 (주) 제우정보 대표이사가 만난자리에서 제우정보의 년간 12억원(3년간 36억원)의 계약은 허위이고 실제로는 년간 3억원으로 밝혀졌다는 이면계약 사실을 폭로한다. 이로 인해 다시한번 리그 참가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지만 3월18일 보배소주의 대표이사 문수기 구단주가 팀 운영의 강한의지를 보여주었고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진다는 조건부로 전북 프로축구단 창단이 승인되었고
 
'''[[완산 푸마]]''' 사태후에 컴퓨터 조립기업인 제우정보의 스폰을 받아 새롭게 '''전북 엑스터'''로 94 시즌에 데뷔를 앞두고 있었으나 1994년 3월15일 정일진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새 구단주 문수기 (주)보배 대표이사와 배성수 (주) 제우정보 대표이사가 만난자리에서 제우정보의 년간 12억원(3년간 36억원)의 계약은 허위이고 실제로는 년간 3억원으로 밝혀졌다는 이면계약 사실을 폭로한다. 이로 인해 다시한번 리그 참가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지만 3월18일 보배소주의 대표이사 문수기 구단주가 팀 운영의 강한의지를 보여주었고 구단주가 재정을 책임진다는 조건부로 전북 프로축구단 창단이 승인되었고
 
프로축구에 참가하게 되었다. 팀 명칭은 '''전북 버팔로 축구단'''이었으며, 완산 푸마 사태로부터 무려 2년여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물의로 인해 구단 스스로 드래프트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완산 푸마의 프로리그 참가가 무산되며 그동안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로 이뤄놓은 전력들도
 
프로축구에 참가하게 되었다. 팀 명칭은 '''전북 버팔로 축구단'''이었으며, 완산 푸마 사태로부터 무려 2년여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물의로 인해 구단 스스로 드래프트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완산 푸마의 프로리그 참가가 무산되며 그동안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로 이뤄놓은 전력들도
은퇴하거나 타 구단으로 이적해 버리며 24명의 선수단이 존재했지만 팀은 대학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그나마 팀이 안 엎어지고 K리그에 참가한데 감지덕지하며 [[김기복]] 감독의 지휘아래 [[1994년 K리그]]에 참가하였지만 팀 지원은 완산 푸마 때보다 별반 나아진게 없었다. 김기복 감독은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시간보다 돈빌리러 다니느라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고, 전북 버팔로 형편을 취재하러 간 기자에게 김기복 감독이 통사정해 돈을 꾸어서 선수단 밥값을 해결(?)하는 등 전설같은 일화를 남겼다. 결국 문수기 구단주는 힘에 부치면서 1994년 8월31일 버팔로 운영을 포기를 선언했고<ref>전북버팔로, 정규리그 참여 재확인 (1994년 08월 31일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19940831162600579?f=o]</ref><ref>1994년 보배소주는 4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구단주의 사재로 반년만에 5억여원이 들었으니 큰 부담이 아닐수가 없었다.</ref> 1994년 9월6일 이사회에서 팀 해체를 전제로 한 연맹의 한시적 직영운영이 결정되며, 구단 사무실은 폐쇄된다. 1994년 11월12일 [[일화 천마]]와의 경기를 치룬 뒤 11월23일 승인이 취소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협력업체 현양이 10억원을 출자하고  현대자동차를 홍보 스폰서로 20억원을 후원하여, 독립법인체  [[전북 다이노스]]를 재창단 함에 따라 전북 축구의 맥을 이어나간다. 이에따라 전북 버팔로 축구단의 [[백송]], [[김경래]] 등 몇몇 선수는 재창단한 전북 현대 다이노스와 계약을 맺으며 프로 생활을 이어갔으나 대다수의 선수는 1년도 안되는 짧은 프로 생활을 마치고 전북 버팔로와 운명을 같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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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거나 타 구단으로 이적해 버리며 24명의 선수단이 존재했지만 팀은 대학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그나마 팀이 안 엎어지고 K리그에 참가한데 감지덕지하며 [[김기복]] 감독의 지휘아래 [[1994년 K리그]]에 참가하였지만 팀 지원은 완산 푸마 때보다 별반 나아진게 없었다. 김기복 감독은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시간보다 돈빌리러 다니느라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고, 전북 버팔로 형편을 취재하러 간 기자에게 김기복 감독이 통사정해 돈을 꾸어서 선수단 밥값을 해결(?)하는 등 전설같은 일화를 남겼다. 결국 문수기 구단주는 힘에 부치면서 1994년 8월31일 버팔로 운영을 포기를 선언했고<ref>전북버팔로, 정규리그 참여 재확인 (1994년 08월 31일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19940831162600579?f=o]</ref><ref>1994년 보배소주는 4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구단주의 사재로 반년만에 5억여원이 들었으니 큰 부담이 아닐수가 없었다.</ref> 1994년 9월6일 이사회에서 팀 해체를 전제로 한 연맹의 한시적 직영운영이 결정되며,<ref>프로축구聯,전북팀 연말까지 지원키로 (1994년 09월 06일 연합뉴스) [http://v.media.daum.net/v/19940906185900862?f=o]</ref> 구단 사무실은 폐쇄된다. 1994년 11월12일 [[일화 천마]]와의 경기를 치룬 뒤 11월23일 승인이 취소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협력업체 현양이 10억원을 출자하고  현대자동차를 홍보 스폰서로 20억원을 후원하여, 독립법인체  [[전북 다이노스]]를 재창단 함에 따라 전북 축구의 맥을 이어나간다. 이에따라 전북 버팔로 축구단의 [[백송]], [[김경래]] 등 몇몇 선수는 재창단한 전북 현대 다이노스와 계약을 맺으며 프로 생활을 이어갔으나 대다수의 선수는 1년도 안되는 짧은 프로 생활을 마치고 전북 버팔로와 운명을 같이하고 말았다.
    
현재의 [[전북 현대 모터스]] 역사의 출발은 [[전북 다이노스]]가 공식 창단식을 거행한 1994년 12월부터로 잡고 있기 때문에 전북 버팔로와는 단절되어 있으며 그 역사는 K리그 공식 사이트에서도 별개로 <del>흑역사</del> 취급하고있다.
 
현재의 [[전북 현대 모터스]] 역사의 출발은 [[전북 다이노스]]가 공식 창단식을 거행한 1994년 12월부터로 잡고 있기 때문에 전북 버팔로와는 단절되어 있으며 그 역사는 K리그 공식 사이트에서도 별개로 <del>흑역사</del> 취급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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