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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지'''(1943년 10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 프로필 ==
* 이름 : '''정강지'''
* 출생일 : 1943년 10월 5일
* 국적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 유스클럽 : [[고려대학교]] 졸업
* 신체 : 167cm / 60kg (선수 시절)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국가대표 경력
: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 [[1974년 서독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 1968년 ~ 197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통산 A매치 39경기 출장 14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유소년 시절 ==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 봉래국민학교, [[부산상고]],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산상고 시절부터 센터 포워드로 맹활약하며 '미완의 대기'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고려대 시절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바 있다.
== 성인 선수 시절 ==
고려대 졸업 후, 군문제 해결을 위해 [[양지 축구단]]에 68년에 입단하여 69년까지 활약하였다. 이후로는 [[육군 축구단]]에 소속되어 [[청룡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1970년을 끝으로 전역하였으며, 1971년 [[신탁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1974년까지 활약한 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 국가대표 시절 ==
양지 시절부터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활약하였으며, 1969년 [[FIFA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2골을 휘몰아쳐 [[한일전]] 완승을 가져온 것을 계기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구성된 [[청룡 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를 맡아 [[메르데카컵]]에서 4골을 몰아넣어 팀 내 득점 1위 및 한국의 우승을 가져오기도 하는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 에피소드 ==
* 축구 센스에 비해 체구가 갸날픈 편이었고 얼굴도 미남형이었다.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 체구는 작았지만 스테미나가 엄청난 선수였다고 한다. 일례로 고려대학교 시절에는,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향해 임종을 지킨 뒤 3일장을 뜬눈으로 보냈으며, 이후 상경해서는 곧바로 [[추계대학축구연맹전]]을 치렀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정선수는 전 경기를 출전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고...
* 부산상고 시절인 1962년에는, [[경남상고]]와 무려 '''5시간 40분'''동안 혈전을 치렀던바 있다. 당시는 [[승부차기]]가 도입되지 않았던바, 3시간 20분 동안 경기를 진행한 끝에 해가 지자 이튿날 다시 경기를 재개하였는데 결국 2일차 경기 2시간 20분 만에 경남상고 측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경기를 마쳤다고 한다. 정강지 선수 본인에게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고..
== 참고 ==
<references/>
[[분류:1943년생]][[분류:개성고등학교의 선수]][[분류:고려대학교의 선수]][[분류:실업축구 선수]][[분류:축구 행정가]]
== 프로필 ==
* 이름 : '''정강지'''
* 출생일 : 1943년 10월 5일
* 국적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 유스클럽 : [[고려대학교]] 졸업
* 신체 : 167cm / 60kg (선수 시절)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국가대표 경력
: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본선 대표
: [[1972년 뮌헨 올림픽]] 아시아예선 대표
: [[1974년 서독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 1968년 ~ 1973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 '''(통산 A매치 39경기 출장 14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유소년 시절 ==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 봉래국민학교, [[부산상고]],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산상고 시절부터 센터 포워드로 맹활약하며 '미완의 대기'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고려대 시절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바 있다.
== 성인 선수 시절 ==
고려대 졸업 후, 군문제 해결을 위해 [[양지 축구단]]에 68년에 입단하여 69년까지 활약하였다. 이후로는 [[육군 축구단]]에 소속되어 [[청룡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1970년을 끝으로 전역하였으며, 1971년 [[신탁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1974년까지 활약한 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 국가대표 시절 ==
양지 시절부터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활약하였으며, 1969년 [[FIFA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2골을 휘몰아쳐 [[한일전]] 완승을 가져온 것을 계기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이후 구성된 [[청룡 대표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를 맡아 [[메르데카컵]]에서 4골을 몰아넣어 팀 내 득점 1위 및 한국의 우승을 가져오기도 하는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 에피소드 ==
* 축구 센스에 비해 체구가 갸날픈 편이었고 얼굴도 미남형이었다. 때문에 여학생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 체구는 작았지만 스테미나가 엄청난 선수였다고 한다. 일례로 고려대학교 시절에는,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향해 임종을 지킨 뒤 3일장을 뜬눈으로 보냈으며, 이후 상경해서는 곧바로 [[추계대학축구연맹전]]을 치렀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정선수는 전 경기를 출전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고...
* 부산상고 시절인 1962년에는, [[경남상고]]와 무려 '''5시간 40분'''동안 혈전을 치렀던바 있다. 당시는 [[승부차기]]가 도입되지 않았던바, 3시간 20분 동안 경기를 진행한 끝에 해가 지자 이튿날 다시 경기를 재개하였는데 결국 2일차 경기 2시간 20분 만에 경남상고 측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경기를 마쳤다고 한다. 정강지 선수 본인에게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고..
== 참고 ==
<references/>
[[분류:1943년생]][[분류:개성고등학교의 선수]][[분류:고려대학교의 선수]][[분류:실업축구 선수]][[분류:축구 행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