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1번째 줄:
1번째 줄:
− == 프로 생활 ==
−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1992년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LG 치타스]]에 지명되어, LG에 입단하려고 하였으나 드래프트가 치뤄진지 불과 며칠 뒤에 2:2 트레이드 형식으로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게 된다.<ref>전경준 선수의 트레이드에는 [[이회택]] 당시 포항 감독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1989년 드래프트]]에서 [[최문식]] 선수를 고졸 신입으로 지명ㆍ조련한바 있었던 이회택 감독의 눈에 전경준 선수는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받았던 것. 이회택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다.</ref>
−
−
− * '''[[차상광]] + [[전경준]] ( [[LG 치타스]] ) ↔ [[박철우]] + [[손형선]] ( [[포항 스틸러스]] )'''
−
−
−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청소년대표및 [[애틀란타 올림픽대표]]를 거치며 성장하였다. 프로 데뷔 초반에는 여기저기 대표팀에 불려다니느라 소속팀에서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1996년 올림픽대표 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뒤 프로 무대에서는 기량이 만개하여 포항의 붙박이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던 중 1999년 [[김한윤]]과 맞 트레이드로 [[부천 SK]]로 이적하게 된다.
−
−
− * '''[[전경준]] ( [[포항 스틸러스]] ) ↔ [[김한윤]] ( [[부천 SK]] )'''
−
−
− 당시 부천에서 [[김기동]], [[이을용]], [[윤정춘]] 등과 함께 황금 미들진을 구성하며 대활약하였는데, 포항에서 보다 공격적인 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ref>이는 당시 부천 감독이었던 [[조윤환]] 감독의 공격전술에 전선수가 특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ref> 전경준 선수의 대활약과 전반 [[이성재]], 후반 [[이원식]] 공격 전술의 폭발로 부천은 [[1999년 K리그]] 준우승과 [[2000년 K리그]] 4위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게된다.
−
− 이후 2002년. 前 부천 SK 선수들을 수집(?)하고 있던 전북의 [[조윤환]] 감독에 의해서 FA 자격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게 된다. 이적료만 5억 5천만원에 달했던 초대형 FA 계약이라 더욱 화제가 되기도. 전북에서는 전반적인 경기 조율을 맡는 플레이메이커로서 기용되었다. 하지만 팀의 내리막과 함께 동시에 내리막을 겪게 되고 2005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K리그를 떠나 싱가포르의 [[S.리그]], [[홈 유나이티드]] 팀에 진출하여 활동하다 2006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
−
편집 요약 없음
== 지도자 생활 ==
== 지도자 생활 ==
2007년부터 [[S리그]]의 한국인 팀이었던 [[코리아 슈퍼레즈]]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으며, 2009년부터는 정식으로 코리아 슈퍼레즈 감독에 취임하여 팀을 지휘하였다. 다만 엄한 훈련방식이라 선수들과의 융화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던듯.<ref>이에 대해 당시 코리아 슈퍼레즈에서 전경준 감독의 지도를 받은 [[장조윤]] 선수가 인터뷰에서 불만을 토로했던바 있다.</ref> 이후 팀이 재정문제로 해체되면서 전경준 씨도 한국으로 귀국했고, 현재는 고향인 청주에서 '전경준축구교실'을 여는등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부터 [[S리그]]의 한국인 팀이었던 [[코리아 슈퍼레즈]]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으며, 2009년부터는 정식으로 코리아 슈퍼레즈 감독에 취임하여 팀을 지휘하였다. 다만 엄한 훈련방식이라 선수들과의 융화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던듯.<ref>이에 대해 당시 코리아 슈퍼레즈에서 전경준 감독의 지도를 받은 [[장조윤]] 선수가 인터뷰에서 불만을 토로했던바 있다.</ref> 이후 팀이 재정문제로 해체되면서 전경준 씨도 한국으로 귀국했고, 현재는 고향인 청주에서 '전경준축구교실'을 여는등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