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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흥''' (1951년 4월 5일 ~ 현재)은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인이다.



== 학창 시절 ==
서울 용산 출신으로 금양국민학교, 배문중학교,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본래는 핸드볼 선수로 활동하였으나, 중학교 시절부터 축구 선수로 진로를 변경하였다고 하며, 이후 [[우상권]] 당시 [[대신고등학교]] 코치의 눈에 들어 대신고 축구부에 진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상권 코치가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부임하면서 대신고 축구부는 일시 해체 상태가 되었고, 이에 조선수는 [[중동고등학교]]로 전학을 가 그곳에서 학업을 마쳤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곧장 은행권 팀 입단을 노린 끝에 1969년 [[조흥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는데 성공하였다.


== 실업 선수 시절 ==
조흥은행 입단 후 [[함흥철]] 코치의 조련을 받으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인 조선수는, 1970년 [[제12회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본선 멤버로 발탁되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이후 해당 대회에서만 5골을 몰아쳐 단박에 주목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약관의 나이로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었을 뿐만 아니라<ref>대표팀 발탁 당시 조선수의 나이는 만 20세 8개월이었으며,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기록을 경신하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이후 [[차범근]]ㆍ[[최순호]] 등이 등장하면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기록은 후배 선수들에게 내줘야만 했다.</ref> 소속팀에서의 활약도도 두드러지면서 [[1970년 추계 실업 리그]]에서도 득점왕을 차지,<ref>당시 [[김진국]] 선수와 함께 7골을 기록하며 공동 수상하였다.</ref> 실업 무대 입단 2년여 만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서 입지를 다지기에 이른다. 이후 1971년 [[해병대 축구단]]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친 조선수는 조흥은행으로 복귀해 1970년대 후반까지 활동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하였다.


== 은퇴 이후 ==
은퇴 후에는 조흥은행 사원으로 입사, 1990년대 후반까지 조흥은행 시흥남출장소장,인계동, 양평동지점장 신한은행 순천연향동 지점장 을 역임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 2000년대 무렵 축구계로 복귀하여 대한축구협회 경기 감독관 직위를 수행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0년 현재는 한국OB축구연맹 이사로 재직 중이다.

== 참고 ==
<references/>
[[분류:1951년생]][[분류:중동고등학교의 선수]][[분류:실업축구 선수]][[분류:축구 행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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