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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년 당시 대우의 1선발 골리는 [[김풍주]] 선수였으나, 김풍주 선수의 국가대표 차출이 잦아지면서 김동훈 선수에게 다른 대우 신인들보다 선발 기회가 빨리 찾아와 88년부터 90년까지 3시즌동안 60경기를 소화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김동훈 선수는 매 경기마다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 비판을 받았는데, 잘할 때는 1경기에도 몇개씩 선방을 해내다가도, 다음 경기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 (특히 골대를 비우고 멀찍이 나와있는 경우가 많아, 역습 상황에 약했다고 전한다.) 로 실점을 허용,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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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불안정한 기복은 김동훈 선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김풍주 선수가 부상 또는 국대 차출이라는 변수가 발생하는 경우 외엔, 김동훈 선수에게 기회가 가지 않는 상황을 자초하는 계기가 되었다. 탐탁치 않은대로 계속 김동훈을 기용하던 대우가, [[신범철]]의 입단 직후, 김동훈을 전력외로 취급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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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1994년 보호 선수에서 제외된 김동훈 선수는, 대우 입단 동기였던 [[김경래]] 선수와 함께 [[전북 버팔로]]에 입단하게 되었고, 전북 버팔로의 1선발 골리로 골문을 책임졌다. 그러나, 워낙 전북 버팔로의 수비진이 약해, 많은 실점을 허용했고 경기당 실점율은 1.9점대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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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시즌을 끝으로, 전북 버팔로가 해체되고 [[전북 다이노스]]로 팀이 개편되면서 김동훈 선수는 계약 해지 되었고, 그 길로 선수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선수 시절
=== 선수 시절===
===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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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공고 재학시절인 83년에 88 올림픽 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전도 유망한 골키퍼였다. 한양공고 졸업 당시, 아주대가 김동훈 선수를 스카웃 하기위해 프로팀 입단을 조건으로 입학을 제의했으나, 한양대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었다. 한양대 재학 시절, 홍콩 퀸스컵 출전 등 국제 대회 경험등을 쌓은 김동훈 선수는, [[1988년 드래프트]]에서 [[대우 로얄즈]]에 3순위로 선발되었다.
한양공고 재학시절인 83년에는 골키퍼로서는 아주드물게 88 올림픽 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전도 유망한 골키퍼였다. 한양공고 졸업 당시, 아주대가 김동훈 선수를 스카웃 하기위해 프로팀 입단을 조건으로 입학을 제의했으나, 한양대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었다. 한양대 재학 시절, 홍콩 퀸스컵 출전 등 국제 대회 경험등을 쌓은 김동훈 선수는, [[1988년 드래프트]]에서 [[대우 로얄즈]]에 2순위로 선발되었다.
=== 선수 은퇴 이후 ===
=== 선수 은퇴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