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8강에 오르는 대파란을 일으키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의 지시로 창설한 [[양지 축구단]]에 대한중석 핵심 전력을 차출당하면서 전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리고 축구단의 후원자이던 [[박태준]]이 포항제철로 옮겨감에 따라 대한중석 축구단의 존립 기반이 흔들렸다. 73년, 포항제철소 1기 준공 기념으로 [[박태준]]이 [[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축구단]]를 창단함에 따라 대한중석 축구단의 잔류 멤버와 스탭진, 양지 축구단이 해산되면서 예편한 [[이회택]] 등 신진 멤버가 합류해 포항제철 축구단을 구성했다. 감독부터 코치, 선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멤버구성이 대한중석 축구단과 상동해, 대한중석 축구단을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 | 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8강에 오르는 대파란을 일으키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의 지시로 창설한 [[양지 축구단]]에 대한중석 핵심 전력을 차출당하면서 전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리고 축구단의 후원자이던 [[박태준]]이 포항제철로 옮겨감에 따라 대한중석 축구단의 존립 기반이 흔들렸다. 73년, 포항제철소 1기 준공 기념으로 [[박태준]]이 [[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축구단]]를 창단함에 따라 대한중석 축구단의 잔류 멤버와 스탭진, 양지 축구단이 해산되면서 예편한 [[이회택]] 등 신진 멤버가 합류해 포항제철 축구단을 구성했다. 감독부터 코치, 선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멤버구성이 대한중석 축구단과 상동해, 대한중석 축구단을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