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된 이후에도 최고 권위의 [[전조선축구대회]]는 계속해서 [[조선체육회]]의 주최로 운영되었으며, 1934년부터 [[전조선종합경기대회]]의 일부로 편입된 상황이라 조선축구협회는 전만주축구단, 동경유학생, 영,불함대축구팀 등 과의 교류전 정도만 주최하는 형편으로 전조선의 축구계를 대표하는 위상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다시 축구가 부활함에 따라 당시 대일본축구협회(현 [[일본축구협회]])가 올림픽 출전에 대한 강화책으로 올림픽 대표선발을 의미도 다소 포함된 제1회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15회 [[덴노배]])를 [[메이지신궁경기대회]]와 분리하여 개최하게 됨에 따라 그 조선예선으로써 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게 되었다. | + |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된 이후에도 최고 권위의 [[전조선축구대회]]는 계속해서 [[조선체육회]]의 주최로 운영되었으며, 1934년부터 [[전조선종합경기대회]]의 일부로 편입된 상황이라 조선축구협회는 전만주축구단, 동경유학생, 영,불함대축구팀 등 과의 교류전 정도만 주최하는 형편으로 전조선의 축구계를 대표하는 위상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다시 축구가 부활함에 따라 당시 대일본축구협회(현 [[일본축구협회]])가 올림픽 출전에 대한 강화책으로 올림픽 대표선발을 의미도 다소 포함된 제1회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15회 [[덴노배]])를 [[메이지신궁경기대회]]와 분리하여 개최하게 됨에 따라 그 조선예선으로써 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게 되었다.<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5040100209102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5-04-01&officeId=00020&pageNo=2&printNo=5146&publishType=00010 축구계의 혁신을 위하야 최강팀을 편성하자! 상] -1935-04-01,[[동아일보]]-,<br>[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504050020910203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5-04-05&officeId=00020&pageNo=2&printNo=5150&publishType=00010 축구계의 혁신을 위하야 최강팀을 편성하자! 하] -1935-04-01,[[동아일보]]-</ref> |
− | <ref>[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5040100209102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5-04-01&officeId=00020&pageNo=2&printNo=5146&publishType=00010 축구계의 혁신을 위하야 최강팀을 편성하자! 상] -1935-04-01,[[동아일보]]-,<br>[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3504050020910203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35-04-05&officeId=00020&pageNo=2&printNo=5150&publishType=00010 축구계의 혁신을 위하야 최강팀을 편성하자! 하] -1935-04-01,[[동아일보]]-</ref> | |
− | 1940년 대회는 [[연희전문|전연전군]]이 함흥축구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일본추구선수권대회]] 본선에는 전연전군, 전보전군 2팀이 출전했다. | + | 1940년 대회는 [[연희전문|전연전군]]이 함흥축구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는 전연전군, 전보전군 2팀이 출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