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포터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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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독 시절 이안 포터필드
2005년 K리그 OB 올스타전때 모습이다.

이안 포터필드(1946년 2월 11일 ~ 2007년 9월 11일)는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전 축구선수이자 감독이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직을 맡았으며, 2007년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로필[편집]

선수 프로필[편집]

  • 성명 : 존 포터필드 (John Porterfield)
  • 통칭 : 이안 포터필드 (Ian Porterfield)
  • 출생일 : 1946년 2월 11일
  • 사망일 : 2007년 9월 11일
  • 유소년 클럽 : 불명
  • 국가 대표팀 기록 : 없음


감독 프로필[편집]

K리그 감독 기록[편집]

소속팀 연도 리그 순위 컵대회 FA컵 아챔
부산 아이콘스 부산 아이콘스 2003 13 10 21 9위 미개최 1라운드 미출전
2004 8 16 12 7위 13강 우승
부산 아이파크 부산 아이파크 2005 9 11 17 4위 13위 1라운드 4강
2006[1] 0 3 3 중도 사임
통산 (K리그) - 30 40 53 FA컵 1회 우승, ACL 4강


선수 시절[편집]

잉글랜드 축구팀인 선더랜드에서 10년간 168경기를 출장하며 활약하였다. 1973년, 잉글랜드 FA컵 결승전때 결승골을 기록하여 팀의 FA컵 우승의 큰 기여를 하였다.[2]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선더랜드가 가장 손꼽는 명장면 중 하나이며, 이때의 활약 덕분에 사후 선더랜드 홈구장에 안장되었다.[3]


감독 시절[편집]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편집]

2003년부터 부산 아이파크 감독직을 맡았으며 2004년에는 부산 역사상 첫 FA컵 우승에 이어, 2005년에는 K리그 전기 리그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4강 달성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이 때문인지 본프레레의 후임으로 차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후보까지 오르기도 하였다. (물론 조선일보의 여론몰이에 가깝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2005년 전기 리그 우승이후 부산은 후기 리그 최악의 부진에 빠졌으며,[4] 심지어 이듬해인 2006년 4월까지 승리를 챙기지 못하여, 26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후, 부산 아이파크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5][6]


한국을 떠난 후[편집]

한국에서 좋지 않은 이별을 고한 포터필드는 2006년 8월 아르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2007년 벌어진 EURO 2008 예선전에서 카자흐스탄폴란드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둬 아르메니아 FIFA 랭킹을 70단계나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년 7월 대장암이 악화되면서 아르메니아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2007년 9월 11일 숨을 거두었다. 향년 61세.


지도자 스타일[편집]

부산에서는 전형적인 4-4-2 전술을 사용하였다. 포백의 오버래핑은 거의 없는 편이었고, 주로 역습상황을 노리는 카운터 전술을 즐겨 사용하였다. 여기에 외국인 감독답지 않게, 독단적인 성격이 있어 코치진 및 부산 선수단과 갈등이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끝끝내 자신의 축구 철학을 관철시켜 부산의 FA컵 우승과 05시즌 전기리그 우승 및 ACL 4강 등 나름의 업적을 이뤄냈기에, 부산팬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애증이 교차하는 감독으로 남아있다.


에피소드[편집]

  • 부산 감독직을 맡으면서 "축구는 신사의 스포츠" 라고 하면서 선수들 이동시에 정장을 착용하도록 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도 부산은 왠만한 일이 아닌 이상 정장 차림으로 각종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여기에 부산 프론트를 설득해 강서체육구장에 부산 아이파크 연습구장과 클럽하우스를 설립하고 유소년 시스템을 일구게 만든 것도 포터필드의 업적 중 하나.[7]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과 절친으로 알려져있으며 포터필드가 사망할때 퍼거슨은 '포터필드가 한국에 있었을때 한국의 젊은 유망주를 맨유로 데리고 온 이야기를 한게 엊그제 같은데'하면서 그를 애도 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2006년 4월 3일 자진 사임하였다.
  2. 당시 선더랜드는 2부리그였고 상대는 당시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수 포진된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3. 관련 기사 : [1]
  4. 이는 박준홍 선수의 시즌 아웃 이후 부산의 플랫4 시스템의 붕괴에 기인하는바가 크다. 여기다 선수들이 전기 리그 우승 이후 나태해졌던 것도 한몫했고..
  5. 당시 나왔던 황당한 소리 중 하나.
  6. 그리고 포터필드 후임으로 온 사람이 하필 .........
  7. 여담으로 부산 아이파크의 전신인 부산 대우 로얄즈는 전국구 인기를 누리는 팀이었고, 대우의 빵빵한 지원이 있었음에도 제대로된 연습 구장이 없어서 동아대학교동의대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훈련을 해야했고, 구단 사무실은 구서동에 위치한 컨테이너 박스 2채가 전부였다. 그랬던 전통(?)을 자랑하는 팀에 제대로된 인프라를 구축토록 한 것은 상당한 업적이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