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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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시절의 신홍기

신홍기(辛弘基, Shin, Hong Gi, 1968년 5월 4일 ~ )는 현대 호랑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K리그 생활을 한 선수이다. 현재 전북 현대 모터스의 코치이다.


프로필[편집]

  • 등록명 : 신홍기
  • 출생일 : 1968년 5월 4일
  • 국적 : 대한민국 대한민국
  • 신체 : 173cm / 67kg
  • 국가대표 경력
1992년 ~ 199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선수
(통산 A매치 46경기 출장 3골)
  • 현 소속팀 : 선수 생활 은퇴
  • 등번호 : -
  • K리그 기록
소속팀 연도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현대 호랑이 1991 39 5 1 4 3 0
1992 39 2 8 6 1 0
1993 12 1 2 1 0 0
1994 20 7 1 2 1 0
1995 34 3 4 6 4 0
울산 현대 호랑이 1996 39 1 4 8 7 0
1997 30 6 2 6 5 0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8 26 2 5 3 1 0
1999 39 0 3 5 7 0
2000 37 0 4 1 4 0
2001 30 14 1 0 3 1
2002[1] 0 0 0 0 0 0
통산(K리그) - 336 41 35 42 38 1
K리그 통산기록은 리그컵기록 포함. 2011년 3월 1일 기준.


지도자 프로필[편집]


유소년 시절[편집]

어린시절 큰 형을 따라 축구를 시작한 신홍기는 처음에는 중앙 공격수로 주목을 받았다. 삼일공고 시절에는 청룡기 전국 고교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 전도 유망한 공격수였던 것. 그러나 반항아적인 기질을 억누르지 못했던 신홍기는 한 때 축구의 길을 접을까 고민하며 방황하기도 했었다. 이 때문인지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했던 신 선수는 간판선수의 부상을 틈타 간신히 출전 기회를 잡게된다. 이후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주전 공격수로 출전한 신선수는, 4경기에서 총 5골을 넣는 기염을 토하며 감투상을 받는다. 신홍기 선수의 이름 석 자가 축구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울산 시절[편집]

한양대에서의 깜짝 활약을 발판삼아 199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2차선발로 현대 호랑이에 지명된 신홍기는, 입단하자마자 중대한 기로에 섰다. 당시 현대 감독이었던 차범근 씨가 신선수에게 수비수 전향을 권유했던 것. 고심 끝에 신홍기는 수비수 전향을 결정했고, 입단 첫 해부터 총 39경기에 출전하며 현대의 간판수비수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특히 면도날 같은 날카로운 태클과 마라톤 선수 못지 않은 엄청난 지구력을 자랑했던 신선수는 당시 K리그 공격수들 사이에서는 일명 ‘저승사자’로 통할 정도였다.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을 마친 신홍기의 축구인생은 이후 탄탄대로를 달렸다. 1991년 세대교체를 하고있던 김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첫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고, 1993년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홍명보의 부상으로 대신 출전한 그는 비록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2] 이후 94년 열린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신홍기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스페인전 살리나스에게 실점을 제공하는 패스미스를 범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울산에 돌아와서도 신홍기는 95년과 96년 34경기 4골과 30경기 1골을 기록했고, 96년 울산의 K리그 첫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수원 시절[편집]

97년 시즌 직후 신홍기는 이적을 요청하게 된다. 96년 당시 신생팀이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타 팀의 핵심전력이 아닌 선수 한 명씩을 가져올 수 있는 선발권을 얻었고, 수원은 신홍기를 지목했다. 하지만, 울산에서는 핵심전력을 지명했다는 이유로 신홍기의 이적을 거부했고, 자신을 대표선수로 발탁해준 김호 감독과 뛰길 원했던 신선수는 2년을 기다린 끝에 FA 자격을 얻어 수원으로의 이적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결국 울산은 수원의 이경수를 받는 댓가로 신홍기를 수원에 내주기에 이른다.


* 이경수 + 3천만원 (수원) ↔ 신홍기 (울산)


98년 입단하자마자 신홍기는 당시 외국인 수비수였던 올리와 함께 수원 수비의 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98년 수원에서 26경기 5골 3어시스트를 기록한 신홍기는 친정팀 울산과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의 허를 찌르는 그림같은 프리킥 결승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우승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9년에도 신홍기는 멈출줄 몰랐다. 수원에서는 유일하게 2년 연속 주장을 맡으며 역대 최강 수원의 구심점 역할을 도맡은 신홍기는 39경기에 출전 3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전관왕 달성을 이끌었다. 신홍기는 사이드백에서 중앙수비로 변신한 2000년, 2001년에도 37경기 4골 30경기 1골을 기록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2001년 말 신홍기는 불의의 다리부상을 당했고, 다리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2002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김경범이 가지고 있었던 최다출장기록 (338경기) 경신에 2경기만을 남겨놓고 그는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 이후[편집]

은퇴후 삼일공고에서 감독으로 지내던 신홍기 코치는 2005년 은사인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고 전북의 코치로 부임했고, 현재까지 전북을 이끌고 있다.


지도자 프로필[편집]


플레이 스타일[편집]

  • 공격수 출신답게 수비수임에도 슈팅 능력이 아주 탁월했다. 특히 코너킥과 프리킥, 패널티킥은 거의 신홍기가 전담하다시피 했고, 덕분에 수비수임에도 30-30 클럽에 가입하며 그 능력을 입증했다.
  • 파이팅 넘치는 수비수답게 경고를 많이 받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퇴장은 한 번밖에 받지 않았다. 카드 관리가 굉장히 철저했다는 증거다.


에피소드[편집]

  • 중학교 시절 신홍기는 반항아 기질을 억누를 수 없어서 친구 한 명과 함께 합숙소를 이탈한 적이 있다. 이 때 신선수와 같이 이탈한 친구가 前 전북의 수석코치를 맡았던 이흥실 씨였다.
  • 2006년 5월 6일 전북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은 신홍기 코치와 최인영 코치가 항의하다 동반 퇴장당하면서, 벤치에 코칭스태프 중 이흥실 코치만이 홀로 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당시 최강희 감독은 성남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다 퇴장당해 벤치에 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조[편집]

  1. 2002년에는 선수등록만 한채 뛰지 않았다
  2. 세계 올스타전에 나간 대한민국 선수는 차범근, 홍명보, 하석주, 박창선, 유상철, 박지성, 차두리, 김주성 등 9명 뿐이다